2009 양양의 6·25 비화

2009 양양의 6·25 비화 목록
    낙산사 군사동원부 1950년 전쟁이 터지고 7월초에 양양지역에 공습이 시작되었다. 인민군 병력을 동원할 군사동원부도 포격에 휩싸이자 급히 군사동원부를 낙산사에 설치하였다. 낙산사는 사찰이었으므로 유엔군의 공습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양양군의 젊은…
    위장한 국군 6․25 때는 남북한간 위장전술이 심했다. 서로 상대방의 군복을 입고 민간인의 의중을 떠보는 일이 많았는데, 전진리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1․4후퇴 때였다. 북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인민군들이 있었다. 마을에서 좌익사상을 가진 이들이 몇몇 환영을 하였다…
    강제노동 주청리의 L은 인공 때 집이 낙산사 사천왕문 아래에 있었다. 그러니 마을의 어떤 모임이 있어도 쉽게 합류하지 못했다. 마을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소식을 잘 전달받지도 못했을 뿐더러 설령 소식이 온다 할지라도 지각하기 일쑤였다. 마을에서는 반동이란 소문이 …
    낙산은 사단 창설지(주111) 양양은 한국전쟁의 와중에 국군의 사단이 숱하게 창설되었던 곳이다. 국방일보(2007년 5월 9일자)를 보자. 12사단, 15사단이 1952년 11월 8일에 창설된 것을 기점으로 하여 1953년 1월 15일에는 21사단이, 1953년 2…
    월리의 탱크부대 1950년 6월 20일경 양양군 월리에 남침을 위한 탱크가 20여 대가 들어왔다. 당시 월리에는 아카시아 숲이 무성하여 탱크를 숨기기에 아주 적합하였으며, 기갑병은 나뭇가지와 풀잎 등으로 위장을 하였다. 탱크는 이후 22일경에도 20여 대가 들어왔다.…
    [참고문헌] 고경재 편,『양양의 땅이름』, 양양문화원, 1995. 국방군사연구소 편,『한국전쟁(상)』, 1995. 국방군사연구소 편,『한국전쟁(중)』, 1996. 국방군사연구소 편,『한국전쟁(하)』, 1997.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편, 소련군사고문단장 라주바예프의 …
    후기 양양은 한국 근․현대사에 있어 상당히 특이한 지역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동학이 왕성하였고, 그 일파인 보천교가 손양면을 중심으로 성행했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설치된 38선은 양양군을 접경지로 만들었다. 인공은 양양군의 향교를 주둔지로 하여 빨치산(유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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