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2009 양양의 6·25 비화 목록
    죽으면 죽었지 못 가 이○국은 지금은 인구리에 살고 있지만, 당시 아랫면옥치에 살고있었다. 당시 면옥치는 남북한간 접경지대로서 상호간 침투가 잦았다. 1949년경의 일이었고 당시 13살이었다. 한번은 집에서 자고 있는데 부엌에서 무엇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소 한 마리의 기쁨 강숙자는 하월천리 출신이지만 인구2리에 시집을 온 다음에 6․25를겪었다. 이른바 백일 정치가 지나고 나서 동짓달이 되자 ‘겨울 난리’를 겪어야 했다. 중공군이 내려온다고 하여 남들은 피난을 갔는데 강숙자는 시어머니가 병이 걸리는 바람에 피난을 갈…
    수색대의 횡포 수색대는 9.28 수복이 될 때 선두에서 목숨을 내걸고 먼저 들어온 군인들이었다. 목숨을 내걸고 들어온 만큼 일 처리가 시원시원한 점도 있었지만 때로는 좋지 못한 일들도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부녀자 겁탈이었다. 심일○은 정자리에 살고 있었고, 남편은…
    아이마저 죽었건만 김인랑은 원포리에서 출생하여 두리로 시집갔다. 6․25가 터질 적에 인구지서 곁에서 가게를 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신발을 주로 팔았는데, 남편은 부산에 가서 짝으로 떼다가 도매도 하였다. 6․25가 나던 날 비가 구질구질 내렸는데, 밤중에 자고 있…
    군인을 숨겨주었더니… 김신월은 6․25가 터지자 시부모와 시누이들과 함께 강릉 사기막으로 피난을 갔다가 하룻밤을 자고 돌아왔다. 집에 들어와 보니 사람들이 6명이 있었는데 셋은 군인이고 셋은 경찰이었다. 김신월 일행이 들어가니 6명이 일행에게 묻기를 “인민군이 나갔습…
    총알을 막아주는 솜이불 솜이불을 막 뒤집어쓰면 총알을 안맞는다고 했다. 50년이 넘은 솜이블 구덩이에다 사람들이 들어가면 그 위에 솜이불을 덮어놓고 물을 막 퍼부어 놓는다. 젖은 솜이불을 만들어 놓는데, 이렇게 하면 총알이 뚫지 못한다고 한다.
    비행기가 떠야 좋은데 오늘은 비행기가 왜 안 뜨지 정병교의 가족은 6․25가 터지자 정선까지 피난을 갔지만 곧 이내 돌아왔다. 다른 누구처럼 인민군이 벌써 진주하여 집에 가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었다. 당시 100일 정치라 불리던 …
    도민증 때문에 건진 목숨 조○구는 부모님과 누이 부부와 함께 동짓달(음력)에 피난을 나갔다. 1․4후퇴를 의미하는데, 그때 도민증이라고 하여 도민증이 있어야 간첩 취급을 받지 않기에 도민증을 발급을 받으려고 주문진읍으로 먼저 향했다. 그때 주문진에 있던 아군이 매형을…
    상월천리에 불 지른 사람은? 이른바 1․4후퇴 당시 아군이 후퇴하면서 집들을 불살랐다. 겨울이니 남침하는 인민군과 중공군이 추위에 허덕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 동해안에 있던 부대들이 후퇴를 하면서 집들을 불살랐는데, 상월천리의 집들은, 속사정은 잘 모르…
    전봇대를 자른 사연 하월천리 윤태열의 형님이 당시 이장을 했다. 그래서 인구와 남애지서를 연결하는 전화가 집에 있었고 그 전화를 연결하는 전봇대가 집 마당에 있었다. 6․25 아침에 다급하게 울려지는 전화벨소리를 듣고 6 25가 터진 것을 남들보다 일찍 알았는데 그리…
    의좋은 형제 인민군이 의용군을 뽑으니 윤태열의 두 형제 중의 하나는 할 수 없이 의용군을 가야만 했었다. 당시 윤태열은 총각이었고 형인 윤광렬은 결혼한 상태였다. 그래서 윤태열은 자기가 의용군으로 가겠다고 하였는데, 형님인 윤광렬은 아우가 아직 어리고 세상물정에 어두…
    두 번 죽은 고호헌 하월천리에서 지방빨갱이라 소문이 난 이는 6․25가 나기 전에는 알수도 없었다. 그만큼 활동이 은밀하였는데, 6․25가 터진 다음 지방빨갱이로 나타난 이는 뜻밖에도 학교 선생이었던 고호원과 지주였던 엄익재였다. 엄익재는 당시 마을에서도 꽤 알아주는…
    술로 푸는 피멍 고정원은 남편이 경찰이었다. 그래서 6․25가 터지고 세칭 100일정치를 받는 동안 숱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었다. 시아버지 형제가 3형제였다. 하루는 지방빨갱이들이 오더니 철사줄로 이들 3형제의 손목을 뒤로 묶더니 모두 끌고 가는 것이었다. 자라목이라…
    남로당원 이대학 간첩사건 이대학 간첩사건이 터진 것은 6․25 이전이었다. 남로당 조직이라 해서 이대학이 총지휘자였다. 집 옆에다가 땅굴을파서 공작실을 만들어서 무전을 치는 것을 방첩대에서 전파를 감지하여 찾아내었다. 가까이 접근을 해 보니 지경리 쪽에서 밤중에 불빛…
    준 대로 받는다 원포리는 이용민이 인민위원장을 했다. 이북에서 남침을 해 나와서 이용민이 위원장을 하면서 자기에게 좀 좋지 않은 이들을 반동이라 해서 매일 저녁 마당이 넓은 집에 모여서 교육을 시켰는데, 자아비판도 하고 연극도 하고 다양하게 교육을 시켰다. 그런데 이…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