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양양-간성 진격전(195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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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523회 작성일 2010-04-07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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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간성 진격전(1951년 5월)(주57)

동해안의 국군제1군단은 중서부전선과 중동부전선의 미군단들이 캔사스선 진출작전을 펼치고 있을 무렵인 5월 25일까지 하진부리로 진출한 중공군의 일부와 대관령에서 치열한 격전을 펼쳐 적을 격퇴하였다. 이로써 군단도 캔사스선을 목표로 반격작전에 동참할 수 있었다.

군단장 백선엽 소장은 지난 5월 공세의 결과로 국군 제3군단과 육군 전방지휘소가 해체되고 군단마저 미제10군단의 작전통제를 받은 일이 있어 국군의 위상이 실추되었음을 통감하고 이번 반격작전에서기필코 국군의 위상을 만회하기로 결심하였다.

군단은 1단계로 매복산-가잔리-인구리를 연하는 선을 목표로 좌전방 산악지대에 수도사단, 우전방 동해안에 제11사단으로 병진공격을 실시하고 국군 제3군단에서 배속이 전환된 제3사단은 아직 부대정비가 완료되지 않아 송계리에서 군단예비로 신속히 부대정비를 완료하도록 하였다.

제11사단은 26일 주문진 남쪽의 연곡천 변의 도로에서 1단계 선인 가잔리-인구리를 목표로 3개 연대 병진 공격을 개시하였다. 제9연대, 제 연대는 적의 저항이 경미하여 캔사스 선을 지난 남대천을 도하 20일 오후에 캔사스 선상의 동쪽 끝 지점인 동해안의 양양을 무혈점 27 령하였다 그러나 작전지역 중앙으로 공격한 제 연대는 주문진 서쪽 . 13하월천리 부근에서 1개 대대 규모의 적과 28일 02:00까지 치열한 격전을 펼쳐 격퇴하였다.

이 무렵 항공관측과 수색정찰 보고에 의하면 적은 인민군 제2군단 13사단을 한계리-원통 선에, 군단 직할의 1개 연대 규모를 군단 정면인 마등령-미시령 선에 긴급히 투입하여 방어거점을 편성한 후 철수하는 중공군과 인민군을 엄호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군단장 백선엽 소장은 설악산 일대에 1개 연대 규모의 적이 배치되었음을 확인하고 전선을 조정하였다. 제11사단(이 무렵 최덕신 준장의 후임으로 오덕준 준장이 부임)은 설악산 일대를, 수도사단은 간성을, 제3사단18연대는 설악산 남쪽의 가라피-마산리 일대를 공격하도록 하였다.

이 명령에 의거 28일 속초 남쪽의 하도문으로 진출한 제11사단9연 대의 엄호 하에 수도사단1연대는 속초 북쪽의 용포리, 교리로 이동하였다. 제18연대로 송천리 일대의 20연대의 진지를 인수하였다. 작전지역을 인계한 제11사단은 설악산을 공격하기 위하여 제9연대를 설악산 입구의 신흥사 부근에, 제20연대를 둔전리에, 제13연대를 강선리에 집결시켰다. 부대이동을 완료한 공격제대들은 서둘러 공격준비에 주력하였다.

29일 동이 틀 무렵 작전을 개시하였는데 의외로 적정이 경미하여 4시간도 안 되어 간성을 점령하였다. 제11사단도 목적한 곳을 점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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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7)『한국전쟁(중)』, 국방군사연구소, 1996, 614-617쪽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