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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의 5월 공세(195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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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934회 작성일 2010-04-0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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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공군의 5월 공세(1951년 5월)(주56)

1951년 4월-5월에 접어들어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춘계공세를 저지하기 위하여 모든 전력을 경주하고 있을 때 후방에서는 이보다 앞서 발생한 국민방위군 사건과 거창사건의 조사 처리문제로 정국의갈등이 심화되던 중, 5월 7일 신성모 국방장관이 해임되고 이기붕 장관이 임명되어 군의 기강확립과 전력증강에 주력하기 시작하였다.

국군제1군단은 중공군의 5월공세를 맞아 설악산 -속초 선에서 분전하였으나 19일 육본명령에 의거 제3군단과 전선을 조정하기 위하여 오대산-두로봉-남애리를 연하는 와코(Waco) 선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였다.

중공군은 공세작전을 펼친 5일 동안 국군과 유엔군의 조직적인 지연작전과 강력한 포병 및 항공폭격에 많은 피해를 입었다. 새로운 예비대의 투입도 가능하였지만, 공격제대들이 입은 인원 손실이 주로 유엔군의 포병화력과 밤낮으로 계속된 항공폭격에 의한 것임을 상기할 때 증원부대의 투입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검토한 지원군사령관 팽덕회는 5월 21일 공격중지를 결정하고 신속하게 후퇴하도록 명령을 하달하였다. 이때 화천저수지를 동서로 연결하는 선이 그들의 철수한계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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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6)『한국전쟁(중)』, 국방군사연구소, 1996, 547, 577, 596쪽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