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사천리가 불에 타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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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827회 작성일 2010-04-0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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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리가 불에 타지 않은 이유

L은 사천리에 살지는 않지만, 사천리가 처가였다. 국군이 양양을 수복한 다음 하루는 L이 처가에 일이 있어 사천리에 왔다. 일을 보고 나가는데 국군이 올라오고 있었다. 손에는 솜방망이에 불을 붙여 든 채.

L은 물었다.

“무슨 일이오.”

“국군이 퇴각하는 중입니다. 마을마다 소각하라는 명이 떨어져 사천리도 불태우러 갑니다.”

L은 곰곰이 생각했다. 사천리는 처가도 있고 또 굳이 불을 태울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한 꾀를 내었다.

“내가 지금 사천리에서 나오는 길입니다만, 거기는 이미 인민군 정찰대가 와 있으니 위험합니다.”

당시 K는 남한의 민정경찰이었다. 그러니 국군이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국군은 사천리를 미처 불태우지 못했다고 한다.

사천리가 불에 타지 않았기 때문에 사천리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다른 마을보다 앞서 갈 수 있었다. 집을 새로 지을 필요가 없으니 그만큼 더 빨리 다른 데 돈을 융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천리가 부자동네라는 말이 이로부터 비롯하였다고 주민들은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