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먹판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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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614회 작성일 2010-04-0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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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판을 아십니까?

인공 때도 마을마다 서당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있었다. 둔전리에도 서당이 있었다. 둔전리는 추씨 집성촌이었다. 마을의 어른 중에서 일가 아이들을 모아놓고 명심보감, 당음 등 여러 가지 서적들을 교육시켰는데, 글씨 연습하는 것이 문제였다. 종이도 부족할 뿐 아니라 먹도 귀했기 때문이다.

종이 대용으로 사용한 것이 먹판이었다. 먹판은 피나무를 잘라 대패로 깎아 평평하게 한 다음 기름을 먹여 만들었다. 크기는 1자×2자 정도 되었다. 그러면 여기에 글씨를 쓰고 난 후 걸레로 닦으면 깨끗하게 지워졌다. 훌륭한 재생용 종이였던 것이다.

먹이 귀했기 때문에 먹 대용으로 사용했던 것이 있다. 아궁이의 솥밑에 보면 그을음이 더덕더덕 붙어 있다. 그 그을음을 긁어낸 후 채에 걸러 낸 다음 솥에 넣고 끓인다. 한참 끓이다 보면 걸죽해지는데, 이것을 가지고 개울에 나가 나뭇가지에 찍어 평평한 돌에 글씨를 썼다.

글씨를 다 쓴 다음에는 개울물을 끼얹으면 깨끗하게 지워졌다. 햇볕에 돌이 마르면 다시 쓰곤 하였는데, 이런 일은 한여름 뙤약볕이 반짝일 때 하였다.

붓은 황모라고 하여 족제비털이 최고였다. 그러나 어려운 형편에 황모를 구할 수 없었기에 붓 대용으로 즐겨 사용한 것이 칡줄이었다.

마침 산골마을 언덕마다 칡은 많이 있었다. 칡이 오래 묵으면 칡줄이 새카매지는데, 그 끝을 살살 돌멩이로 찧으면 마치 붓처럼 잔뿌리가 실처럼 나오는 것이다. 그것을 붓 대용으로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