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양양의 6·25 비화

2) 38선 이북의 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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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725회 작성일 2010-04-0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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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38선 이북의 양양

금번 전수조사를 통하여 드러난 사실은 이북사람들도 이북에서는 살기가 힘들었다는 점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경제적으로 현물세, 사회적으로 매일같이 이어지는 학습, 정신적으로 꼼꼼하게 죄어오는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 등은 사람들을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전쟁 중의 이야기는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이다 보니 일방적으로 희생당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것도 남한으로 보아서는 점령지나 다름없는 지역이었으므로 점령지인 양양에 사는 주민들로서는 나름대로 말 못할 사연들도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직도 양양의 주민들이 한국전쟁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필자에게 사연을 제공하면서도 실명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언제 총알을 맞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제공한 사연은 크게 문제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필자는 그들의 마음을 존중하여 이 항목에서는 대부분 가명으로 처리하였다.

38이북의 양양지역에서 전쟁 전 가장 큰 사건은 호림부대 사건일것이다. 호림부대 사건에 관하여는 여러 문헌에 이미 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 나름대로 몇 가지를 더 조사해 보았다. 필자가 만난 호림부대의 그 분이 어쩌면 마지막 생존자일 것 같은 생각이들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세월은 벌써 60년이 흘렀던 것이다.

38이북지역을 전수조사를 하였지만, 디지털기기를 다루는 필자의 부족한 능력으로 인하여 ⅓ 정도의 자료가 사라지는 봉변을 당하였다. 또한 지면의 제약도 있어서 여기에 기재한 사건은 양양군 전체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기록이다. 이 점은 참으로 유감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