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철광산의 문화사-2

Ⅶ. 九龍鑛山 - 개요, 광산의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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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151회 작성일 2013-04-2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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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 요

양양군 서면 갈천리 산 28번지에 있으며 광구의 범위는 약90정 보로 구룡령 일대에 퍼져있으며 자철광으로 철 함유량은52%이다.
구룡광산의 시작은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1940년대 초에 일제에 의해 채굴되어 오다가 해방과 더불어 중단되었고, 1963년 지질학 박사 김옥준씨의 확인으로 채광 활동을 하여 월간 300톤을 채굴하 여 자동차 편으로 속초항에 운송하여 일본으로 수출하였으나 생산 규모가 영세하고 열악한 도로여건으로 철광석 운송이 어려웠고 석 유파동을 겪으면서 채산성이 악화되어 1970년 이후 생산이 중단 되 었다.
<출처:양양군지>

2. 광산의 경과

1) 일제시대의 운영
그 당시 일본사람들이 들어와서 광산을 시작을 할 때 보급대로 일 본 갈 사람은 일본으로 갔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일제가 구룡령 입구 에 대장간을 차려놓고 철을 캐는데 사용하는 각종 기구로 굴을 쇠꼬 챙이로 100m정도를 뚫어 철을 캐냈으며 갱도에 동발을 해 들어가며 캐낸 철은 인발구라고 불리는 구르마[수레]를 소달구지처럼 만들어 서 사람이 썰매처럼 끌어 낸 후 산 중턱으로 쏟아 부은 다음 케이블 카로 아래 선광장으로 옮긴 후 철광석을 선별해서 목탄차가 싣고 나 갔는데 40년대 이전부터 해방 전까지 철을 캐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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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1> 구룡광산 답사 2011.11

2) 수복후의 운영
해방 이후, 광산이 비어 있다가 수복후60년대 초 함태 광산에서 인수 광산을 운영 하면서 속초 항구로 철광석을 실어 내다가 수송 문제와 운반비가 비싸다 보니 결국은 도중에 문을 닫아 버렸다.
철의 질은 양양광업소도 보다 좋다고 하였으며, 지역 주민 뿐 아 니라 외지인도 많았고 당시 노동자는 7~80명 정도 되었다.
철을 캐내서 1차 구르마로 옮기고 산 중턱에 있는 조구통에 부린 후 케이블카를 이용해서 구룡령 입구 선광장으로 옮기면 인부들이 선광을 해서 차로 실어 운반을 했으며 아직도 케이블카 와이어 줄이 그대로 남아있고, 원형이 보존된 굴 이외에 갱도입구가 함몰된 굴 2 곳이 더 있으며, 예전에 사용했던 화약고 건물 2동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으며, 지금도 철을 캐서 당시 선광을 해서 야적을 해 놓은 것 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쇠꼬챙이로 뚫고 철을 캤지만 한국전쟁이 끝나 고 수복 이후에는 착암기로 채광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