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촌

Ⅰ. 槪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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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2,360회 작성일 13-04-3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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襄陽鐵鑛은1980年代까지 國內最大鐵鑛生産地로 알려져 있었 다. 鐵鑛生産은 매우 歷史가 오래된 것으로서 朝鮮王朝實錄世宗實錄地理志第153卷江原道襄陽(都護府)의 特産物編에 “쇳돌이 부 (府)의 서쪽으로 10리 떨어진 鐵掘山에서 난다. (石鐵産府西十里鐵掘山)”라고 하였고, 新增東國輿地勝覽第44卷江原道襄陽(都護府) 의 土産編에도“鐵이 서선사(西禪寺)동쪽 봉우리 밑에서 난다. (鐵出西禪寺東峯下)”라고 기록하였다. 또 長承里(鑛山村)사항골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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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는 예전에 철광석에서 철을 뽑아냈던 철의 잔해[(殘骸)똥]가 발 견되고 있다. 따라서 철을 생산하여 이용 되었던 흔적이 남아있는 점으로 미루어 오래전에 철광석을 캐내어 인간이 필요로 한 농기구 를 만들어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쉰 패랭이’란 지명은 장승리(광산촌)의 탑동에 있는 골짜기로, 조 선시대(연대미상)에 50여 명의 광부들이 철을 캐러 항내로 들어갔다 가 굴이 무너졌는데 구조작업을 할 수 없어 모두 사망하였다고 한 다. 사망자의 정확한 인원은 알 수 없으나 그들이 쓰고 다니던 패랭 이(모자)를 벗어놓고 들어갔는데 그 수가50여 개가 넘게 남아 있었 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광업소가 전성기일 때 50인총으로 관리 하여 철광석을 채광 하였다.
양양광산이 본격적으로 채광을 시작하면서 근로자들이 모여들어 집터가 부족하게 되자 골짜기 마다 가옥을 신축하는 등 조용하였던 마을에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당시 골짜기 마다 있던 자연부락 명 은 사항골-흑간리-들떨골-미나밋골 - 복상나무쟁이 - 쉰패랭이 - 양짓말-아리랑고개-탑골 등이다.
철광은 서면 장승리와 서면 갈천리에 각각 위치한 양양광산과 구 룡광산 두 곳에서 일제강점기에 채광에 착수 생산되었다. 8.15광복 이후에는 남북분단으로 공산치하에 있다가 한국전쟁이후 국유화되 어 1956년부터 다시 가동되었다. 생산량이나 규모 면에서 국내 최대 의 자철광산이었다. 지질은 광구 주변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 편마암 류와 변성퇴적암류를 주로 하여 이를 후기에 관입한 성장암류 등으 로 이루어져 있다.광체(鑛體)는 변성퇴적암류 내에 좁게 발달하고 있으며 지표면에 가까운 상부 광체는 거의 개발이 완료된 상태이다.
1967년에 삼미광업개발주식회사가 인수하면서 민영화되었고 1987년에는 대한철광개발주식회사의 양양사업소로 이관되었다. 그 후 값싼 외국산 광물의 수입증가와 인력 부족으로 채산성이 악화되 자 생산량이 현저한 감소세로 돌아서게 되자 1995년에는 완전히 중 단되어 폐광되었다.
양양군은 2011년1월양양군과 대한광물(주)가 철광산업의 ‘국내 부존 자원개발을 위한 철광석 광산개발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 를 체결하였다. 뒤늦은 감은 있으나 잊혀 져 가고 있는 양양철산이 채광이후 폐광되기까지 숨겨진 애환과 풍속을 재조명하고 이를 집 대성하여 향토사로 보전코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