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철광산의 문화사-2

鑛夫들의 이야기-덕대와 천양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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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699회 작성일 2013-04-2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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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장승리 문기용71세)
사례 1
광차 운반거리가 가까우면 50m먼 곳은5~6oom
70년부터 논화항에서 목 광차(나무로 만든 광차)로 운반을 했다. 광산 굴 안에서 철광석을 붓는 슈트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 밑에 서 광차를 대고 철광석을 빼가지고 광차로 끌고 밖으로 나왔는데 운 반 거리 가까우면 50m 먼 거리는 5~600m나 되었다.
밖에서 전차가 끄는 광차는4~50대정도(2인1광차)이고 중단별 로 작업을 해도 모든 노동자가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논화항의 레벨은 그 당시 5중단은 하부중단2개 정도/상부중단 3개 정도 이었고,
양양항의 레벨도 논화항과 비슷하였다.

급여는 짧은 거리가 긴 거리보다 많았다.짧은 거리에10차, 먼 거리에3차를 하는 등의 기준량을 정해 놓았다.
스키프 광차(45′정도 기울어진 선로에 광차를 끌어 올리는 기구)에 사고가 나서 상해를 입은 자가 실려 나오 는 사람을 양양항에서 본적은 있다.
기준 50m로1개의중단을 만드는데,지반의 영향이나, 광석의 량 에 따라 길이가 달라진다.
각 항 마다 광석 매장량이 한정 되어있기 때문에, 매장량의 8~90%정도 캐낸 후에는 폐석이 많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타산이 맞 지 않음에 덕대로 넘겼다. 그래서 그 시점에서 논화항이 덕대로 넘 어 갔다.

사례 2
사고가 난 자리는 절대로 안 간다
다마시[발파공]들은 대괴[현장에서 큰 덩어리 큰 암석으로 표현함] 를 혼자서 어떻게 처리를 못하잖아요. 그러면 다이너마이트를 이용 해서 폭파를 시키는데, 밑에서 부터 시작하면 위에서 대괴들이 엉켜 서 안내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발파하는 사람과 폭파 뒤처 리를 하는 방법에 따라 사망사고 발생 여부가 결정된다.
대괴들이 엉켜있을 때에 채광부는 돌이 올려 진 상태나 가만히 옆 에서 상태를 보면 먼지가 떨어지거나,돌이움직이는 소리가 나는데 이로 위험여부를 판단한다.
양양항 에서 발파공이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돌 사이에 끼우는 순 간 돌이 무너지며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다음조가 불안함이 존 재하였으므로 채광을 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그 사고지점 은 절대로 가지 않는다.
원 도목항에는3번항,4번항,5번항,6번항이 있고, 그 밑에 티광 채가3번항이3개중단, 4번항이 4개중단,5번항이4개중단, 6번항이 3개중단,티광채는5개중단.
동향 쪽 방향이 제일 규모가 컸다.


(구술자 장승리 이낙준73세)
사례 1
덕대광산의 애로사항(품위를 제대로 받기가 어려워...)
처음에는 양양항 덕대에서 일하다가 논화항으로 옮기면서 감독 으로 바뀌었다.
그 당시 임시부는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다.하물며 밥을 먹을 때 도 고입들은 의자에서 먹는데 고입들이 밥 먹으러 와서 ‘입시부가 의자에서 밥을 먹어!?’ 하면서 쫓아내면 임시부들은 구석에서 하이 바를(안전모)깔고 앉아 밥을 먹었다.
임시부는 고입들의 기분을 맞추어주어야 한다. 때에 따라서 오 야삥에서 품위를 떠서 몇 %가 나오는데 부탁을 거절하면 품위가 줄 어들고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디젤 광차를 끌고 나가면 운전 수보고 술을 가져오라고 한다. 술을 주면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품 위를 떨구는 등의 불이익을 받았다.
좋지 못한 광석이 나갔을 때 품위가 깎이는 경우는 어쩔 수 없지 만 좋은 것이 나갔을 때는 술을 안 가져다준다는 이유로 품위가 깎 이는 경우가 있다.

사례 2
외로운 덕대감독
제일 어려운 일은 항장, 과장 등이 있으면 도와주지만 덕대에게 완전히 맡기고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일을 다 관리하는 것이 어려웠다.
덕대는 좋은 광석을 다 캐낸 후 타산이 맞지 않은 항에 대해서 하 청을 주는 것인데 그 항에서 좋은 광석을 캐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사고가 발생하여 그 논화항에 들어가서 스키프로 내려가서 권양 기로 광차를 끌어올리는데 권양공이 덕대사장과 같이 있다가 술을 한잔 마시고 광차를 내 밀었는데 와이어를 너무 빨리 움직여서 차 제에서 덜컥 걸리면서 올라오는데 로러가 두 동강이 나서 스키프가 경사를 내리 굴러서 광차를 운반하고 빈 광차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광차에 치어서 즉사하였다. 항장이 덕대감독관에게 사고 발생 현장 감독을 어떻게 하느냐고 다그치고 추궁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구술자 청곡리 이건욱70세)
사례 1
농땡이를 피우면 힘든 작업장으로 보내
하천에서 흘러 내려온 모래와 흙을 채로 쳐서 철을 골라내는 작업 을 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였는데 채금한 것을 모아 놓으면 질통으로 져서 채우는 학구 띠기가 있는데, 제방 쌓는 것처럼 모으고 만표를 통해서 임금을 받았다.
자성 있는 선별기를 통해서 광석은 선별되고 나머지는 흘러 내려 지게 되었고 침전지에 광석 가루가 한 가득 차게 되면, 다른 통에 넣고 다 찬 통은 차에다 싣고 속초로 반출을 하였다.

1차 현장은 들돌 거리에서 광산 입구까지 있었고 2차 현장은 탑동 전체이다.
천양회사는 어기연씨가 현장 감독을 했고,한조가16명이 잘 해야 만 수익이 발생하고 8~9부 정도 해야 하는데5부 정도 밖에 하지 못 하면 다른 사람들이 손해를 보게 되어있어 농땡이를 피우는 사람은 일을 몰아주어 힘들게 만들어서 스스로 나가게 만들었다.
2차 현장인 탑동에는 그 골짜기가 꽉 찰 정도로 약 4~500명 정도 가 일을 했고 들덕골에도 인부가 많았는데 양양사람들은 거의 다 일 을 할 정도였으며 교대 없이 주간에만 일을 했다.

사례 2
일공일과 도급일 그리고 학구띠기
일공과 도급일이 있었는데 팁동의 선광과 앞에서 회사에 습직으 로 일했고,여기는 일공 저기는 도급.여기는 하루 일당제니까 놀아 도 일당은 월급형식으로 일했고,하루120원 받다가 200원 받는 데 로 옮겨갔음.
탑동에서1일 생산량은 대략50Ton 정도 였으며1개조 당15학구 이상을 생산 하는데 2개조가 가동 되었으며, 질이 좋은 철을 생산 했다.
쌓아놓은 철을 기계에 넣으면 흙과 일반 모래가 없이 철가루만 나 오는데 철이 잘 배어있는 가루는 단단하지 않았다.

사례 3
여자만 태워주는 운전수에게 골탕을
광부들이 광석을 잘 실어주지 않으면 운전수가 다 싣고 갔는데 트 럭 기사들이 광업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빵 등을 갖다 주며 잘 보이려고 했으며, 비가 오 는등 궂은 날씨에는 트럭 기사들이 남자 는 태우지 않고 여자 노동자들만 태우고 퇴근 시켜주어서 트럭 기사 를 골탕 먹일 속셈으로 한정된 이상의 광석가루를 꾹꾹 눌러서 실어 보내기도 했는데 그 기사는 속초까지 가면서 타이어 펑크가 나서 애 를 먹었다고 했으며, 그 다음부터는 광석을 실어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태평실에서는 나가는 무게를 측정만 했지, 중량 과다는 적용하지 않았다.
임시직은 작업 중에 사고가 발생해서 신체 이상이 생기더라도 보 상을 받지 못하므로 버스도 잘 태워주지도 않아 걷거나 자전거를 이 용해서 출 퇴근 하는 사람이 많았다.

사례 4
사항골 덕대에서 댐공사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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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26> 현재 사항골 댐 전경 2012. 11
천양회사를 그만두고 사항골 쪽에서 댐을 막으려고 골재 끌어내 는 잡부 일을 했으며 진흙으로 다져서 쳐가지고 흙댐을 만들었다.
사항하고 도목항하고 논화항하고 앞으로 있는데, 항내에서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물이 흘러서 물길을 바꾸기 위해서 댐을 만들게 된 것 인데 약 600m정도의 물길을 돌리고 발파를 하고 나면 틈새로 물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물웅덩이에서 물이 차면, 몇 십m 성토를 하기도 했고 도우저가 웅덩이를 파면 물이 샘처럼 차게 되어 말기(둑)를 막아 놨는데 펌프 공이 물을 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수렁이 된 물에 후두가 딸려 들어가서 되었고 물이 딸리면 펌프를 틀어야 하는데, 펌프공이 일 처리를 하지 않아 수십 차를 파내도 물이 넘었기 때문에, 후두를 자 동차로 당기니 끊어져서 물이 꿀꺽 넘쳐서 엄청난 손실이 발생 하였 는데 펌프공이 날벼락을 맞을 것 같아 그날로 도망가고 말았다.
논화항도 고구찌가 무너졌고 댐에서 숙직을 한1년 정도 할 때, 밤에 무너져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 밑에는 기둥을 세우고 광석을 캐냈고 기둥을 세운 부분까지 광석을 캐내고 오래 놔두니, 지반이 약해져서 무너져 내려 광산에서 폐석을 갖다 넣었지만 복구 는 되지 않았는데 이곳이 바로 사항이다.

논화항이 고구찌도 위험해서 이곳에서 한 2달 간 약 300m를 뚫기 도 하였고 지반이 단단해서 뚫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정상적으로 1회에1m정도해야 하지만 5~80cm 정도 밖에 못했다.
착암 발파 하는 과정에서 헛김이 세면 맞닿을 정도로 붙는다. 그 러면 가운데를 빼내고 22발의 불 다는 순서가 따로 있고 심지가 2m 정도 되었는데 한마디 차이로 뚫는데 발파 이후에 발생하는 먼지는 후앙(휀)과 호수를 이용해서 모두 불어 냈다.
구멍은21~22개정도뚫으면, 굴진 하느라 다른 데를 캐기 위해 길을 트는 작업을 한 것이었다.
다른 길이 막혔으니까 광석을 빼낼 길을 만드는 작업을 했고 둘이 서 광차에 달아놓고, 4광차 정도 퍼내다 보니, 쿵 하더니 양쪽 굴이 다 꺼지는 일도 있었고,
발파 작업은 2교대로 진행 하였으며, 교대 시간이 다 되어서는 발 파 준비를 다 해놓고 퇴근을 하고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