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철광산의 문화사-2

鑛夫들의 이야기-경비실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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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519회 작성일 2013-04-25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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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연창리 김정한73세)
사례 1
양양철광 경비의 임무
68년부터94년까지 재직 했다. 경비 업무는 광업소 재산보호 와 외부인, 차량 출입 여부를 관여하고 자재창고2동(값비싼 물건이 많 았음)와 광산의 재산보호 및 화재 예방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경비는 초창기에 30여명이 근무하였으며, 초소는 3개(1초소, 2초 소, 5초소)초소로 장승리가 1초소(3교대 1명), 작은 굴 쪽 2초소(3교 대 1명), 사항골 산등에 5초소(3교대 1명)가 있었으며,
광업소 총무과 앞에 경비실(고정3명,3교대7명)과야간에 화약 취급소에 순찰조가1명이 있었으며,주간에는 8시간, 야간에는 매 시각 광업소 창고의 보안단속을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순환근무 수 행 하였고,항내를 제외한 모든 지역 순찰 하였다.
각 초소별 초소일지를 작성하였고, 경비실에서 총괄적으로 정리 하여 상급에 보고를 하였다.

사례 2
무장공비 침투 후 총과 실탄 휴대 근무
예비군 창설되고 1968년1월21일 북한에서 무장공비(김신조)가 침투 당시 주 업무가 무기고 경비 업무였는데 M52라는 경비용 총 (카빈총)과 실탄을 휴대하고 경비를 섰으며,기간은 대략 2~3년 정 도이었고 경비 교대 시간은 아침 8시, 오후 5시, 밤 12시였다.
도난사고에 대하여서는 가정에서 사용 가능한 소소한 물품을 가 져가는 경우는 있었으나, 자재 등의 물건을 매매 용도로 훔쳐 가는 경우는 없었다.
양양 광업소 극장에서 불이 난적 있었으나, 광업소 내 화재가 발 생한 적은 없었음.
작은 굴 초소 옆에 있는 태평실 에서는 차량으로 광석을 측정을 하는 사람이 있었고 광석차는 측정 후에 전표를 끊어 갔다.
임금은 광업소 내 노동자에 비해 임금은 적었다. 경비실 근무자도 임시로 지내다가 고입으로 변경되는 자도 있었다.
명절 등을 포함해서1년 내내 쉬는 날이 없었다.
임금은 적어도 출근하면 노동을 하는 근로보다 일이 수월하기 때 문에 광업소에 있는 사람들이 선호하던 자리였다.


(구술자 서문리 이정헌75세)
사례 1
오종(午鐘)이라고 불렀던 양양광산의 사이렌
『한때 광산에서 1975~1979년도로 기억되는데 그때 경비실 소관 일로 사이렌[그때 양양사람들은 주로 오종이라고 불렀음]을 울렸는 데 비상계획부에서 실시하는 민방공훈련과 현충일행사 중 묵념을 할 때 울렸고 매일 정확화게 정오시1가2 되면 울렸는데 그 사이렌 소리가 양양은 물론 강현면 양은 들려 산과 들 논밭에서 일하는 사 람들은 물론 일상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오종은 점심시간을 알리기 도 하는 애환이 서린 소리이기도 하였는데 그 사이렌은 1초소 뒤에 있었으며 광업소에서 폐석을 제재소 뒤에서부터 점차적로 내려오면 서 버리게 되자 사이렌설치대가 폐석 산 더미에 묻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