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철광산의 문화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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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018회 작성일 2013-04-3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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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는 그 시대의 주역들이 기록하고 보존하지 않으면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버리는 속성이 있으며 후세가 이를 복원하려면 많은 시간 과 인력과 비용을 투자해야 조금이나마 되살릴 수 있다고 생각됩니 다. 그래서 양양광업소가 폐광 된지 18년 밖에 되지 않지만, 양양철광 산은 근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온갖 수난과 역경을 겪으면서 5.16 을 주도한 박정희 정권이 관심을 가지고 처음으로 산업시찰을 할 정 도로 비중을 두었던 곳으로서 조국근대화의 일원으로 주민 소득증대 에 기여하였으나 1995년 생산성이 없다는 이유로 폐광되어 생활고에 서 벗어나고자 부푼 꿈을 안고 각지에서 모여든 광부들과 가족들의 삶을 외면하고 역사 속으로 살아졌습니다.폐광이 되자 광업소에 종사하시던 많은 분들이 일자리를 찾아 떠나시고 남아 있는 광부들도 고령화되어 돌아가시고 생존해 계시는 분들 도 기억력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으며 광부사택을 비롯한 시설물들도 노후되어 철거되었 으며 2008년부터 광산을 재개발하고 있어 모든 시설이나 자료들이 훼손되고 있는 실정 이므로 더 늦기 전에 그 당시의 광산촌의 생활과 문화를 되살려서 향토사로 정리하고자 금번 우리 문화원에서는“양양철광산의 문화사”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부터 각 종 자료의 수집과 생존해 계시는 광부들의 증언을 통하여 많은 부분의 사실들을 찾아내 게 되었습니다. 양양철광의 역사를 살펴보면 철광생산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서 조선왕조 실록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보면 1,400년대부터 생산한 것으 로 추정됩니다.근세의 철광산은 서면 장승리와 갈천리에 각각 위치한 양양광업소와 구룡 광산 두 곳에서 생산되었으며 양양광산이 국내 최대의 자철광산이었습니다.
양양광업소가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33년부터 일제가 시험채굴을 하 여 오던 중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1941년부터 본격적으로 채광하여 속초항을 통해 일본 야하타(八幡)제철소로 운반하여 무기를 생산하였다고 합니다.그러나 8.15 광복과 더불어 폐광되었으며 남북분단으로 공산치하에서 채굴하다가 한국동란 후 행정수복이 되자 국 유화되어 1956년부터 다시 가동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양양철광 공사가 설립되어 경영하 다가 1964년 대한철광회사에 합병되었으며 1967년 삼미광업 주식회사가 인수하면서 민 영화되었으며 1987년에는 대한 철광개발 주식회사의 양양광업소로 이관되어 운영하여 왔습니다.6.25 한국전쟁 이전의 자료와 생활상은 알 수 없으나 수복이후 폐광되기 전까 지 여러분의 증언을 통하여 광부들의 고뇌와 광산촌의 애환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양양철광산의 문화사”를 정리하기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애쓰신 양양문화원 부설 향토사연구소 이종우 소장님을 비롯한 위원 여러분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 다.그리고 많은 문서와 사진 등 자료들을 기증하여 주시고 기꺼이 증언에 협조하여 주신 많은 분들께도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본“양양철광산의 문화사”가 향토사로서 각광을 받기를 기대하면서 많은 분들이 읽고 활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