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정대

 2) 해월정(海月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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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969회 작성일 2014-06-1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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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양양읍 조산리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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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 혁 : 조인벽(趙仁璧)은 양양으로 낙향한 이후 이곳에 해월정을 짓고 산수간을 소요(逍遙)하면서 대자연과함께하는 시예(詩藝)로 소일하였으며,후진을 양성하면서학문과 도덕을일깨워 이 지방의 풍속 순화에 심혈을기울였다.또한 여러 유생들과 강학(講學:학문을 닦고 연구함)을즐겼으며,월촌 정만(月村鄭漫)과 강해 이장년(江海李長年)그리고 도사 혜선(道師慧禪)등과 시우(詩友)로 지냈던 것으로 파악된다.

 

본래 호를 우계(愚溪)라고 하였으나 이곳 해당에 정자를 짓고 해월정(海月亭)이라고 현판하고 자신의 아호도 海月亭이라 하고詩友들과 詩를 짓고 뜻을 풀며시흥으로 소일하였다. 강해는 말하기를 “나의 벗 조인벽의시는질탕(跌蕩)하고 호매(豪邁)하여 속세의 먼지가 묻지 않았다”라고하였으며 혜선 도사는 “조 선생은 인간세계 사람이 아니라 그 절개가 고귀하기가 진나라 도연명에 비유 된다” 고하였다. 그 당시 이 고장은 왜구를 방어하는 군관들의 수자리〔국경을 지키던일〕촌락으로 지극히 영세한 곳으로서 풍속과 문물이 크게 폐허화되었다.

 

조인벽이 학문과 도덕을 일깨워서 풍속을 순화시키면서 자신도 시예로 소일하기도하고 혹은 짝지〔지팡이의 방언〕를집고 산수 간에도 거닐며 때로는 도롱이를 걸치고낚시를 하기도 하며 세상을 잊은 듯이 지냈다. 그리하여수백 년 후에까지 선생의 덕망이 전해져 오고 있다.

 

조인벽 선생의 시 한수가 낙산사 의상대에 있던 것을 동명서원으로 옮기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 내용 또한선생의 마음과 생활을 잘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 시문


海月亭遺詩  해월정유시〔해월정 조인벽(海月亭趙仁璧) 1330~1393〕

 

蝶翅勳名薄(접시훈명박) / 공훈과 명예는 나비 날개와 같이 얇기만 하고
龍惱富貴輕(용뇌부귀경) / 용뇌 같이 여기는 부귀는 가볍기만 하더라.
萬事驚秋夢(만사경추몽) / 모든 일은 싸늘한 가을 밤 꿈에 놀다 깨는 것이니 다 잊고
東窓海月明(동창해월명) /동창에 비칠 바다의 달이나 쳐다보세
淡淡西山月(담담서산월) / 서산에 걸친 달은 희끄무레하고
靄靄空中雲(애애공중운) / 공중에 구름이 길게 뻐쳤네
山人不畏虎(산인부외호) / 산사람이 범도 두려울 것 없어
永野不庵門(영야불암문) / 밤새도록 문도 닫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