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물

【 조관현(趙觀顯) 】

페이지 정보

조회 2,500회 작성일 2015-04-28 15:31

본문

‣ 郡守兼司令官趙公觀顯不忘碑(군수겸사령관조공관현불망비)


시대 : 조선
재임기간 : 고종 33년(1896년 ) 6월∼고종 37년(1900년) 3월 [3년9월]
유형/재질 : 비문 / 돌
문화재지정 : 비지정
크기 : 높이150cm,너비38cm,두께10cm / 갓 높36, 너45, 두13
전 소재지 :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구교리와 연창리 사이 도로변
현 소재지 :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군행리 현산공원
서체 : 해서(楷書)
서자/각자 : 미상

 

 ‣ 개관(槪觀)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군행리의 현산공원 소재 조관현(趙觀顯)군수 비가 있으나 무슨 이유로 불망비를 세웠는지 자세한 기록이 없다. 본관은 풍양(豊壤)이다.
  1896년 3월4일 이후 강릉 대공산성에서 참서관 신분으로 義兵과 전투를 치른 후, 고종 33년(1896년 건양1) 6월에 양양군수로 부임하여 고종 37년(1900년 광무4) 3월에 퇴임하였다. 재임기간 중 토비중대장(討匪中隊長)을 겸임하면서 의병을 진압하였다. 현산공원에 있는 碑의 일부가 묻혀 있어 비문을 확인할 수 없다. 군수 조관현은 문헌기록이 보이지 않으므로 고종실록, 승정원일기 기록을 발췌하여 실는다.

 

『고종실록』
  고종 29년 (1892년 壬辰) 10월 11일 1번째 기사에서 경무대(景武臺)에 나아가 왕세자(王世子)가 시좌(侍座)한 가운데 경과 별시(慶科別試)를 행하였다. 문과에서 심상필(沈相弼) 등 20명을 뽑고 무과에서 조관현(趙觀顯) 등 564명을 뽑았다.

 

『승정원일기』
고종 29년 壬辰 (1892년) 10월 12일  선공감(繕工監) 주부(主簿)에 조관현을 단부(單付)하였 는데, 무과(武科) 甲科 제1인이었다.
고종 30년 癸巳 (1893년)  1월 29일  조관현을 훈령원 판관(訓練院 判官)으로 제수
고종 30년 癸巳 (1893년)  6월 29일  선전관(宣傳官)으로 제수
고종 30년 癸巳 (1893년)  7월 28일  훈련원 첨정(訓練院 僉正)으로 제수
고종 31년 甲午 (1894년)  2월 22일  총어영(摠禦營) 초관으로 제수
고종 31년 甲午 (1894년)  12월 7일  부위(副尉)
고종 33년 丙申 (1896년) 6월 7일 친위 제1연대 제1대대 중대장 (親衛第一聯隊第一 大隊中  隊長) 정위(正尉) 조관현의 휴직을 명하다,
고종 33년 병신 (1896년) 6월 7일  양양군수 에 임용하고,
고종 37년 庚子 (1900년) 3월 28일 양양군수 조관현의 본관을 면직하였다.
고종 42년 乙巳 (1905년) 11월 18일 육군보병 정위 조관현을 육군연성학교부에 보함.
고종 43년 丙午 (1906년) 2월 28일 육군연성학교부(陸軍硏成學校附)정위 조관현 휴직을 명하였다.


參考文獻

 『승정원일기』, 『양양군지』, 디지털강릉문화대전


 關聯金石文

 郡守兼司令官趙公觀顯不忘碑

 

 

11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