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물

【 조진상(趙鎭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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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464회 작성일 2015-04-2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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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府使趙公鎭常永世不忘碑(부사조공진상영세불망비)

시대 : 조선
재임기간 : 헌종 8년(1842년) 12월 ∼ 헌종 12년(1846년) 12월 [4년]
유형/재질 : 비문 / 돌
문화재지정 : 비지정
크기 : 높이120cm,너비37cm,두께14cm / 갓 높21, 너45, 두11
전 소재지 :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시변리 구 7번국도 도로변
현 소재지 :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시변리 구 7번국도 도로변
서체 : 해서(楷書)
서자/각자 : 미상

 

 ‣ 개관(槪觀)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시변리의 조진상(趙鎭常,1791∼1854년)비는 재임 중 환곡(還穀)을 갚지 못해 근심 걱정하는 백성들의 아픈 마음을 성심으로 영문(營門)에 알려 천석의 곡식을 탕감(蕩減)하여 주었다. 부임한지 4년 후인 헌종 12년(1846년)에 12월 22일 영원군수(寧遠郡守)로 영체(寧遞)될 때 고을의 주민들이 은혜에 감복하여 다음과 같이 不忘碑를 세웠다.

  '래읍지전환심위민막성심론보영문감천곡수일향감혜각석이송덕' (來邑之錢還甚爲民瘼誠心論報營門減千穀數一鄕感惠刻石而頌德)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자는 성오(聖五)이다. 공(公)의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로 휘(諱)는 경규(景逵)이며 아들은 통덕랑(通德郞)이고 휘는 재형(載涥)이다. 헌종 2년(1836년) 인릉참봉(仁陵參奉)으로 출사 그해 평시주부(平市主簿)가 되었으며 1837년 신창현감(新昌縣監)을 제수 받았다. 1839년 익산군수(益山郡守)로 영전하여 재직하다가 헌종 8년(1842년) 12월 25일 양양부사로 제수되었다. 철종 즉위년(1850년) 진주목사(晉州牧使), 철종 3년(1852년) 청주목사(淸州牧使)를 역임하였다.


參考文獻

 『승정원일기』, 『강원도사』, 『양양군지』, 『숙재집(肅齋集)』


 關聯金石文

  府使趙公鎭常永世不忘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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