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물

【 이영식(李英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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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488회 작성일 2015-04-2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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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府使李公光植永世不忘碑(부사이공광식영세불망비)

시대 : 조선
재임기간 : 순조 8년(1808년) 6월 ~ 순조 10년(1810년) 1월 [1년7년]
유형/재질 : 비문 / 철
문화재지정 : 비지정
크기 : 높이 120cm, 너비 38cm, 두께 5cm
전 소재지 :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상양혈리 7번 국도 도로변
현 소재지 :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군행리 현산공원
서체 : 해서(楷書)
서자/각자 : 미상

 

 ‣ 개관(槪觀)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군행리 현산공원 소재 이영식(李英植,1749∼1812년)부사는 언행이 신중하고 선치(善治)함으로 관민(官民)이 열복(悅服)하고 원만히 행정을 실시하여 관내가 안태(安泰)하여 불망비를 세웠는데, 조선시대 양양부의 수령들의 선정비 중에서 유일한 양각철비(陽刻鐵碑)이다.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화여(華如), 호는 청리(淸里)이다.
  정조 7년(1783년) 증광시에서 진사 2등으로 합격한 후, 정조 21년(1797년)부터 선전관(宣傳官)ㆍ액외장용위(額外壯勇衛)ㆍ가주서(假注書)를 지내고, 순조 3년(1803년) 문과에 급제 종부주부(宗簿主簿)ㆍ도총도사(都摠都事)ㆍ감찰(監察)ㆍ병조좌랑(兵曹佐郞)을 지낸 후, 1805년 훈련부정(訓練副正)으로 승차하였다. 1806년 사헌부 지평(持平)으로 있다가 같은 해 7월 18일 함평현감(咸平縣監)으로 제수 되었지만 7월 26일 이조좌랑(吏曹佐郞)으로 임명되었고, 1808년 사헌부 장령(掌令)으로 승차하였다.
  순조 8년(1808년) 6월 21일  襄陽府使로 제수 받고 부임하였으며 순조 10년(1810년) 훈련첨정(訓練僉正)으로 이임하였다. 같은 해 장진부사(長進府使)로 제수되었다가 약 한 달 후에 우림장(羽林將)으로 임명된 후 사간원 헌납(獻納)이 되었다. 1811년 부산첨사(釜山僉使)와 곽산군수(郭山郡守)를 역임하고, 1812년 헌납으로 제 기용되었다가 같은 해인 1812년 6월 용천부사에 임명되었다. 이 후 관직이 종2품 이조참판(吏曹參判)과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에 이르렀는데, 卒年이 1812년으로 되어 있어 추증(追贈)된 벼슬로 보여 진다.


《參考事項》
  불망비에는 이영식(李英植)이 이광식(李光植)으로 양각(陽刻)되어 있으며, 이영식은 초명[初名: 처음에 붙인 이름으로 아이 때의 이름을 이른다]이며 족보에는 이광식으로 되어 있다. 또한 이 불망비는 당초 남궁억선생님이 양양초등학교장으로 재직할 당시인 일제강점기에 양양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져 있었던 것을 李光植 府使의 후손인 양양군 양양읍 임천리 이종성씨와, 양양군 손양면 주리 이건주씨 집에 보관되었다가, 1960년 이후 양양군 손양면 상양혈리 7번국도 도로변에 세워져있었으며, 1995년에서 1999년경에 현산공원으로 이건(移建) 하였다고 이광식 부사의 6세손인 이건주(1938년생)씨가 증언하였다.


參考文獻

 『승정원일기』, 『강원도사』, 『양양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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