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물

【 양중하(梁重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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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531회 작성일 2015-04-2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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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府使梁公重廈愛民善政碑(부사양공중하애민선정비)


 

시대 : 조선
재임기간 : 숙종 28년(1702년) 4월~숙종 31년(1705년) 3월 [2년11월]
유형/재질 : 비문 / 돌
문화재지정 : 비지정
크기 : 높이 140cm, 너비 45cm, 두께 23cm
전 소재지 :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청곡2리 도로변 속칭:비석거리
현 소재지 :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군행리 현산공원
서체 : 해서(楷書)
서자/각자 : 미상

 

‣ 개관(槪觀)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군행리 현산공원 소재 양중하(梁重夏,1641∼1718년)비는 재임기간 중 선정을 펼친 것에 감복하여 관민들이 선정비를 세웠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대재(大材)이며, 출신지는 서울이다. 숙종 1년(1675년) 식년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으며, 숙종 4년(1678년)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한 후 박사 겸 시봉상시직장에 올라 선조실록을 수정하고 개정하는 일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헌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을 편찬하는 일에 등록낭청(謄錄郎廳)으로 임명되어 가장사초(家藏史草)와 ≪승문원 承政院日記≫·≪비변사등록 備邊司謄錄≫·≪추국일기 推鞫日記≫ 및 기타 각사(各司) 기록 등을 참고로 헌종개수실록을 편찬해 3년 만인 1683년에 완성하였다.
  숙종 4년(1678년) 승문원 정자(正字)로 임명 된 후 주서(注書)·보안찰방(保安察訪)·부사용(副司勇)·병조좌랑(兵曹佐郞)을 지낸 후, 1682년 외직인 영평현령(永平縣令)으로 나갔다가, 1683년 병조정랑(兵曹正郞)·지평(持平)·정언(正言)·형조정랑(刑曹正郞)을 역임하고 1686년 부여현감(夫餘縣監)이 되었다가 안주목사(安州牧使)를 지낸 후, 숙종 28년(1702년) 양양부사(襄陽府使)를 제수 받았다.
  숙종 31년(1705년) 부사과(副司果)로 제수 받고 이임하였다가, 종성부사(鍾城府使)ㆍ호조참판(戶曹參判)ㆍ동부승지(同副承旨)ㆍ서산군수(瑞産郡守)ㆍ좌윤(左尹) 등을 두루 역임하고, 숙종 42년(1716년) 관직이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에 이르렀으며, 향년 7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參考文獻

 『숙종실록』, 『승정원일기』, 『서당사재』, 『사마방목』,
 『강원도사』, 『양양군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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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府使梁公重廈愛民善政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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