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물

【 강호(姜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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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877회 작성일 2015-04-2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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府使姜公鎬淸德善政永世不忘碑(부사강공호청덕선정영세불망비)

시대 : 조선
재임기간 : 현종 원년(1660년) 6월 ~ 현종 5년(1664년) 1월 [3년7월]
유형/재질 : 비문 / 돌
문화재지정 : 비지정
크기 : 높이160cm,너비50cm,두께22cm / 갓 높44, 너60, 두33
전 소재지 :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구교리와 연창리 사이 도로변
현 소재지 :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군행리 현산공원
서체 : 해서(楷書)
서자/각자 : 미상

 

‣ 개관(槪觀)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군행리 현산공원 소재 강호(姜鎬, 1605∼1667년)비는 선정을 기리기 위해 불망비가 세워졌다.
  본관 진주(晉州), 자 경숙(京叔), 전남 화순(和順)에서 태어났으며, 증조부는 강운상(姜雲祥)이고, 조부는 강첨(姜籤), 부친은 강학년(姜鶴年)이다.
  인조 13년(1635년) 생원이 되고, 인조 20년(1642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643년 정 7품 관직인 승문원주서(承文院注書)가 되었다. 1644년부터 정자(正字)ㆍ정언(正言)ㆍ직강(直講)ㆍ사서(司書)를 엮임하고, 효종 원년(1650년)에는 병조정랑(兵曹正郞)과 지평(持平)을 지내다가, 1655년 4월 사은사(謝恩使)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후 장령(掌令)ㆍ헌납(獻納) 을 역임하고, 효종 7년(1656년) 인동부사(仁同府使)로 나갔다. 1657년 필선(弼善)과 장령(掌令)을 지내다가 현종 원년(1660년) 양양부사(襄陽府使)를 제수 받았다.
  현종 5년(1664년)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으로 기용되어 이임한 후, 1665년 길주목사(吉州牧使)로 나갔다가 1668년 형조참의(刑曹參議)ㆍ조호조참의(戶曹參議)ㆍ승지(承旨)를 역임한 후 1669년 10월 원양감사(原襄監司)로 제수되어 강원도에서 돌아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염병으로 졸(卒)한 뒤, 증직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겸 동지경연의금부춘추관성균관사(同知經筵義禁府春秋館成均館事),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에 추증 되었다.
《參考事項》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인동향교 입구에 강호 부사의 유애비가 세워져있다.]
효종 7년(1656년))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효종 8년(1657년) 필선(弼善)으로 승배되어 떠났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의 선정을 기려 주민들이 비를 세웠는데, 비의 앞면[碑陽]에는 ‘부사강후호청근유애비(府使姜侯鎬淸謹遺愛碑)’라 새겨져 있고, ‘순치십오년이월일립(順治十五年二月日立)’이라 기록되어 있어 이 비가 1658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參考文獻

 『헌종실록』, 『헌종개수실록』, 『승정원일기』, 『대전시사』,
 『한밭인물지』, 『국조방목』, 『강원도사』, 『양양군지』,
  디지털구미문화대전,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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