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물

【 유항(柳恒) 】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1,855회 작성일 15-04-28 17:24

본문

‣ 府使柳公恒善政碑(부사유공항선정비)
 

시대 : 조선
재임기간 : 인조 11년(1633년) 5월 ~ 인조 13년(1635년) 12월 [2년 7개월]
유형/재질 : 비문 / 돌
문화재지정 : 비지정
크기 : 높이143cm,너비55cm,두께22cm / 갓 높45, 너60, 두29
전 소재지 :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청곡2리 도로변 속칭:비석거리
현 소재지 :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군행리 현산공원
서체 : 해서(楷書)
서자/각자 : 미상

 

‣ 개관(槪觀)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군행리 현산공원 소재 유항(柳恒, 1574∼1647년)비는 과만[瓜滿 : 벼슬의 임기가 끝나는 시기]으로 이임하는 부사 유항의 선정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선정비를 세웠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상(汝常), 호는 구봉(九峯)으로 청주출신이다. 세린(世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봉 유의(柳儀)이고, 아버지는 예조참판(禮曺參判) 영길(永吉)이며, 어머니는 권우(權祐)의 딸이다.
  선조 34년(1601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606년 판관으로 재임 중에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예조좌랑(禮曺佐郞)ㆍ정언(正言)을 지낸 뒤, 광해군 4년(1612년) 유영경(柳永慶)에게 추형(追刑)이 가하여질 때 그의 일파였다는 죄로 삼수에 안치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사헌부장령에 등용되었다가 1625년부터 1628년까지 외직으로 단천부사(端川府使)ㆍ길주목사(吉州牧使)를 역임하고, 1630년 내직인 호조참의(戶曹參議)와 병조참의(兵曹參議)를 지내다가 인조 11년(1633년) 5월 양양부사로 부임하여 인조 13년(1635년 乙亥) 12월에 이임하였다. 인조 24년(1646년) 추관(推官)으로 안익신(安益信)의 옥사를 잘 처리하여 강원도관찰사에 올랐다가 이듬해 치사[致仕: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 하였다.
  강원감사로 있으면서 신부례(新婦禮)를 감영에서 치룬 일과 각 고을에 제물을 분정 한 것 때문에 대간의 논평을 심하게 받았다. 이와 연관하여 원주목사 이성연(李聖淵), 이유창(李有昌), 홍천현감 신평(申坪)을 파출시켜 문제가 되기도 하였으며, 인조 25년 (1647년 丁亥) 4월 12일에《강원감사 유항(柳恒), 황해감사 홍전(洪瑑)이 치계하기를, “날씨가 너무나 가무니, 해당 관사로 하여금 향과 축문을 내려 기우제를 지내게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라는 기록도 있다.

○癸未/江原監司柳恒、黃海監司洪瑑馳啓: “暵乾日甚, 請令該曹, 別降香祝, 以爲設祭祈雨之地。” 上從之。

 시에 뛰어났으며, 저서로는 『九峯集』이 있다.


參考文獻

 『선조실록』, 『광해군일기』, 『인조실록』, 『승정원일기』,
 『증보문헌비고』, 『국조방목』, 『연여실기술』, 『강원도사』,
 『양양군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關聯金石文

 府使柳公恒善政碑

 

13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