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물

(2) 잔교리 38°선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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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469회 작성일 2015-04-2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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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현북면 잔교리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자 미ㆍ소 양국은 한반도의 북위 38°선을 경계로 남쪽엔 미군이 북쪽엔 소련군이 진주하여 일본군의 무장을 국군이 통수하고 있다가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시키는데 합의하였으나 8월 하순 38°선의 정확한 지점을 찾아 북상하였으나 자연 지세에 의한 편의상 현 잔교리 하천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소련군 초소가 남쪽에는 아군초소가 설치되었으며 한마을이 불시에 양단되고 해상에서까지 남북왕래가 끈기여 혈육이 생이별하고 소로가 적대시하는 민족적인 비극이 비롯되었다.
  이처럼 당초 38°선은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우연히 일시적인 군사분계선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후 남북 분단을 소련군은 현남면 시변리까지 남하하여 이시 진주하였다가 동년 9월 중순 미군이 고정시키는 정치경계선이 되었으며 마침내는 1950년 6월 25일 동족상잔의 참상을 낳고 말았다. 6ㆍ25한국전쟁 중에는 피아간 일진일퇴의 격전장으로 폐허가 되었으며 동년 10월 1일 분단 이레 최초로 국군 34단 23년대 3대대가 38°선을 돌파 북진함으로써 이날을 국군의 날로 재정하게 된 기원이 되었다.
  이에 순국한 호국의 얼이 서린 이곳에 6천만 겨레가 하나가 될 날을 앞당기려는 간절한 염원과 성심에서 민족통일 양양군 협의회 회원이 주최가 되고 강호 제헌의 협찬으로 분단역사와 통일일지의 산 증표로 삼고자 표지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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