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물

(1) 김경길(金景吉)

페이지 정보

조회 2,396회 작성일 2015-04-28 11:25

본문

효자통정대부강릉김경길지비(孝子通情大夫江陵金景吉之碑)

 

▪소재지 : 강현면 적은리
▪생몰년 : 1642년~1727년


  관향은 강릉이며 강현면 적은리에 행적비가 세워져있다. 호는 묵간(黙幹), 조선조초기 군기정(軍器正) 벼슬을 지낸  효온(孝溫)공의 후손이다.
  14세에 모상(母喪)을 당하고 어린나이에 3년을 시묘하였으며 시시왕래(時時往來)하며 부친을 문후하였다. 그 후 시묘가 종료되자 부친의 득병으로 고심 중 병환중의 부친이 오이를 희구함으로 시절은 9월 중추라 오이를 찾아다니니 세인이 왈 “중추에 무슨 오이를 구하느냐 헛수고를 하지 말라.”하며 심지어 비웃기까지 하였으나 굴하지 않고 찾아다니던 중 2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홀연히 한 노인이 나타나 오이를 두개 주거늘 뜻밖의 일이라 백배사례하고 머리를 든즉 그 노인은 행방을 감추었다. 이는 반드시 신의 가호라 자각하고 부친께 올렸더니 그 후 병에서 회복되었다. 수년 후에 다시 득병하여 병세가 악화일로에 있을 때 공은 부친의 대변을 감미하고 재생의 희망을 잃었다.[당시 한방에 변이 달면 죽고 쓰면 산다는 것이 있다.]
  백방으로 구약하던 중 병중의 부친이 민물고기를 희구하였으나 때는 엄동이라 구하기 힘이 들었다. 그는 빙판을 뚫고 수족을 적시며 개울을 헤매기에 오리지성이면 감천이라 한 마리의 큰 송어가 빙판위로 뛰어오르기에 이를 잡아다가 부친에게 복용시킨 결과 회생되어 오래 살았다고 한다. 조선 정조 15년(1791년)에 그의 내용이 왕에게까지 상문되자 어명으로 낙산사 미니실(彌尼室)앞 대로좌변에 비각을 건립하였는데 지금은 강현면 적은리 삼가동에 이건하였다. 이 사적은 현재 양양향교의 삼강행실록(三綱行實錄)에 기재되어있다.

 

59.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