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물

(4) 영암당출세비(靈岩堂出世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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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421회 작성일 2015-04-2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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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양양군 양양읍 화일리


  양양군 강현면 정암리 태생으로 김신용(金信龍)의 막내아들인 영암당(靈岩堂)은 13세에 설악산 영혈사로 출가하여 성률장로(性律長老)의 수제자가 되어 제오세(第五世) 관암당설우(寬庵堂雪佑)로부터 청허(淸虛)하게 법을 받고 득도하여 영암당묘잠(靈庵堂妙岑)의 법명을 받은 선사로서 소시에는 어렵게 지냈으나 막바지 가는 길에 이르러 이승을 뜨려는 멸도(滅度)가 보이드니 3일 만에 입적하니 정골사리(頂骨舍利) 일과를 남기고 초연히 열반한 성공한 선사였음을 기리기 위하여 1760년 1월에 영혈사 부도군 내 세웠다.

<비문의 내용>
  영암당묘잠선사(靈庵堂妙岑禪師)는, 관동지방 양양의 정암리에서, 김신용(金信龍)의 막내아들로서. 13세에, 출가하여 설악산영혈사에 들어와, 성률장로(性律長老)의 수제자가 되었다. 제오세(第五世) 관암당설우(寬庵堂雪佑)로부터 청허(淸虛)하게 법을 받았다. 소시에 어렵게 지내었으나, 막바지 가는 길에 이르러 성공한 자이다.
  지황의 은혜를 잊어가며, 이 땅에 여러 번 절터를 이룬 흔적이 있으니, 돌에 구멍을 뚫어 물에 띄우리만치 수고하시고, 실로 홀로 힘쓰셨으니, 혹이 부처를 뵐 수 있는 신인(信人)이었다. 그는 재물로도 베풀었으니, 그 공을 말하면, 삼세숙세(三世宿世)의 인연이라. 조금도 흠 없는 숙녀 같이 깨끗한 덕행이었고, 성정(性情)이 남과 달라, 마음씨 부드럽고 지나치지 않음을, 평생 업으로 삼았으니, 별로 기특하지 않다하나, 아미타불(阿彌陀佛) 부르는 소리, 그치지 않았으며, 두해(二秋)이어 풍년든 가을날에, 이승을 뜨려는 멸도(滅度)가 보이드니, 삼일 만에 입적하셨다.
  바야흐로 열반성체를 법에 따라 설치하니, 홀연히 서풍(大風)이 크게 일어, 모두가 괴이하게 여겼는데, 그 날 저녁에 이르러, 서기(瑞氣)가 하늘에 가득하고, 상서로운 빛(祥光)이 불멸하니, 오로지 모인 군중이 성체를 받들어 드리며, 정골사리(頂骨舍利) 일과가, 초연히 서쪽 십여 걸음에 있어, 찾아가서 거두어, 석탑에 봉안하였다. 분명하게 보노라 후인(後人)이 만만세(萬萬歲)밝히려니, 이같이 그 공적 본받음은, 이에 틀림이 없도다. 반야(般若)를 모두 이루고 가셨네. 숙연히 이룬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언덕이여!

 

       1760년 정월  일 세움.
       明谷山人騰雲震一書(곡산인등운진일서명)
       弟子比丘淑賢義淨(제자비구숙현의정)
       孫弟就文始訔淸淑(손제 취문 시은 청숙)
       刻字洪九三(각자 홍구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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