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정비화

28. 책상은 포탄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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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201회 작성일 2016-03-2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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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책상은 포탄상자


노재춘 (남, 81세, 양양읍 구교리)

면담일 : 2015.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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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은 국군으로 동생은 인민군으로 서로 다른 전쟁터에서 싸웠다 .


6 · 25 한국전쟁 당시 중학교 3 학년이었는데 그때 기차에는 군수물자만 실어 나르고 사람들은 태우지 않았다 .

아버지가 월남하려는 사람들을 안내해 주는 일을 한 월남방조사건에 연루되어 원산 감옥에 1 년간 수감 되었다가 50 년 6 월에 만기 출소하였는데 군수 물자 수송으로 기차를 태워주지 않아 걸어서 오셨다 .

우리 형제들이 월남하였으니 아버지를 믿고 월남을 결심한 사람들이 안내를 부탁했던 것이다 . 아버지는 한번에 2~3 명씩 7~8 번 안내해 주었다고 한다 . 그러다 내무서원이 우리 집을 감시하고 있다고 마을 사람들이 알려주었지만 잠복하고 있었던 내무서원에 잡혀 양양 내무서에서 재판을 받고 원산형무소에 갇힌 것이다 .


1950 년 5 월 이전부터는 인민군들이 기차에 군수물자를 싣고 와서 월리 아카시아 밭에 탱크를 숨겨놓고 밤에는 38 °선 근처로 옮겨갔다 . 동네사람들이 자연히 흰 패와 빨간 패로 나뉘었다 . 우리는 형과 사촌들이 서울로 공부하러 갔기 때문에 흰 패라 하였다 . 작은형은 인민군에 입대하여 전쟁에 나갔는데 포로가 되어 거제도수용소에 있다가 반공포로 석방할 때 돌아왔다 . 그러니 형제가 형은 국군 , 동생은 인민군으로 전쟁터에서 싸운 것이다 .


1 · 4 후퇴 때 우리는 용천에 살았는데 국군 대대 본부가 우리 집이었다 . 군인들이 곧 후퇴를 하는데 인민군이 집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집은 우리가 태우고 나갈 테니 먼저 나가라고 했다 . 벌써 양양읍내는 화재가 나서 밤하늘이 벌겋게 밝아있었고 주인을 잃은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밤하늘에 메아리쳤다 .

피난생활을 끝내고 수복이 되어 집으로 들어오니 집은 타 없어지고 묻어둔 곡식들은 모두 파 헤쳐져 있다 . 우선 집 탄 자리를 치우고 온돌에 흙과 돌을 섞어 쌓고 지붕은 솔가지나 풀을 이어 비를 가리게 하고 살았다 .


- 교실은 불탄 방앗간에서 멍석을 깔고 책상은 포탄상자로 만들었다 .

국군이 양양에 입성하여 마을마다 부역이 배당되었다 . 우리는 아버지가 병약하여 내가 대신 나갔다 . 군용차로 도착한 곳은 고성 건봉사 근처 공병대부대였다 . 도로보수나 길을 닦기도 하지만 탄약과 보급품을 지고 산위로 운반하는 일을 했다 . 몇 번을 나르고 있었는데 내가 나이가 어리다고 철모에 벗겨진 글씨를 칠하고 잔심부 름을 시켰다 . 껌 , 비스킷 등 과자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 약 1 개월을 있었는데 동료가 집에 가지 말고 같이 다니자고 했지만 돌아왔다 . 집에 돌아와 얼마 있으니 학교에 가라고 해서 학교에 가니 벌써 다른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 중학교 3 학년에 들어갔다 . 군인 갔다 온 학생도 있고 나이가 3~4 살 차이도 많았다 . 교실은 서성용 [ 구교리 태산연립 앞 군청길 53 일대 ] 이네 불탄 방앗간 에서 멍석을 깔고 책상은 군포탄상자로 만들었다 . 고등학생은 거의 인민군에 나가고 살아서 돌아온 학생은 몇 명 되지 않았다 . 고등학생부터는 깎은 목총을 내주고 제식훈련 , 총검술을 가르쳤다 . 이승만 대통령이 물치 비행장에 왔을 때 행사에 참가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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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탄상자로 책걸상 만드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