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정비화

1. 포로수용소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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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340회 작성일 2016-03-2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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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로수용소 탈출


노돈 (남, 96세, 양양읍 성내리)
면담일 : 2015.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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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산군수와강경군수가포로수용소탈출자를적극도와주라고했다.
고향은손양면상왕도리였다. 일본보국대에끌려갔다돌아와서우차로물건을 운반하는 일을 하였는데 친구가 월남하는 것을 도와 달라 하여 안내하고 오니 누가 고발하여 내무서에 끌려갔다. 나는 월남하는 사람들을 여러 번 안내한 것이들통이나서월남방조죄에해당되어2년형을선고받고함흥형무소에갇혔다. 유엔군이인천에상륙후아군에게밀려후퇴를하고있는시기인1950년
10월 6개월에서 1년 남은 죄수들을 어디인지 모르는 곳으로 이송되는 기차가언덕을 오를 때 뛰어내려 탈출을 한 후 미군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아가리 배 (LST수송선)로부산서면포로수용소에도착심사를하였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포로 중똑똑하고학력이있는사람이 심사관이 되어 포로들을 조사했다. 배를 타고 온 포로들이 엄청 많았다. 약 8,000명 이라했다.
나이 40미만 포로들은 논산으로 이송되어신병훈련소짓는일을 했다. 나는 포로 중에 간부를 맡아양양사람들을연락하고빨갱이를회유하여반공이념을갖게하고탈출할때 도양양사람들을모아같이탈출하였다. 그런데비오는날군인들이들어와기 상시키더니 탈출하라고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밖에 나오니 철조망을 끊어놓았는데 800명이 한꺼번에 나가니 불빛이 환한데 겁이 났다. 양양사람 7~8명이 모여 같이 가기로 했다.
미군들이 비상이 걸려 자동차 서치라이트를 비추었다. 10시 30분경 강경 경비대가길을막아서이장집으로갔다. 60대로보이는사람으로아들은군에갔다고한다. 논산과 강경군수가 포로탈출자를적극도와주라고 했다고한다. 경찰서장이 우선 옷을 갈아입힌다. 연자방앗간에 들어가 밤을 새웠다. 보리밥 주먹밥을 보내주어 먹었다. 이장 집에 가지 않은 사람은 산속으로 도망가서 고생이 많았다고 했다. 논에서 모를 뽑는 노인을 만나 사정이야기를 하고 집집마다 나뉘어 밥을 얻어먹었다. 대전 우체국장 집에 들어가 머물다 대전 정거장에 오니 미군만 봐도 겁이나 숨어서 다녔다. 대전역에서 역장 실에 들어가니 역장님이 전방에 보국대 갔다 교체해 오는 길이라고 대답하라 하면서 기차로 원주로 보내주었다.

- 양양네거리에서박종승민정관이나와환영해주었다.
원주에서양양갓바위사람정경철을만났는데 그는정보과장 이었다. 그분의 도움으로 안 형사를 소개받아 배급소로 갔다. 보급소에서 보리쌀 2포대, 안남미 1포대를 받았는데 무거운 것을 어떻게 할 수 없어 안 형사가 술과 고기로 바꾸고 돈 8,000원씩 주었다. 고마워서 우리는 돈을 걷어 안 형사에게 2만원을 사례로 주었다. 버스까지 태워주어 진부에서 칼국수를 먹고 강릉에 도착했다.
강원여객에서 내려 강릉경찰서에 가니 탁상연씨가 사찰과장이었다. 또 주문진까지 보내주어 최병용 이라는 집에서 2일을 묵고 기사문리 헌병대에서 서류작성 통행증을 해주어 양양에 도착했다. 양양 네거리에는 박종승 민정관이 나와 우리8명을환영해준다. 군청앞에서스리쿼터에태워군CIC에가서진상을예기하고집에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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