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정비화

(4) 교통, 통신, 신문

페이지 정보

조회 2,215회 작성일 2016-03-28 16:03

본문

(4) 교통, 통신, 신문
교통에관하여는6ㆍ25전쟁이 발발하기전까지는 일제강점기 양양광산의 자철을 운반하기위해 동해북부선 개통으로 양양에서 원산까지 기차가운행되었으나, 전쟁으로 인하 여철로와 기관차(機關車)가 모두 파괴되 어운행은 중단되었다.
1군단장은 1952년 4월 20일 속초건설회사에 민간차량이 없어 귀농선 이남지역의 영농에 애로가 많다는 것을 알고 군용차를 이용토록 배려하여 줌으로서 양양의 38°선에서 귀농선인 죽왕면 문암리까지 영농이 가능했다. 당시에 이러한 특단의 조치가 없었다면 출입영농은 감히 엄두도 못 내었던 것으로 식량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던주민들에게는큰혜택이었다.
반면 서울로 가려면 진부령을 넘어 새벽에 떠나면 해가질 무렵이라야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당시의 교통수단은 극히 빈약한 상태이어서 사람들 대다수는 걸어서다녔고짐은지게로운반하거나아니면우마차로짐을운반하였다.
통신수단의 실태를 보면 민간용은 전무한 상태이며 군용선을 이용한 행정기 관에만 설치 이용되었다. 언론기관으로는 제1군단에서 종군신문으로 제작되어 전황 을알리고 중앙소식과 지역소식을 함께 지역주민에게 전할뿐만아니라지 역내소식을 전했다. 그러던 1952년4월15일 『동해일보』를 창립하여 사장에 김 진익을 총무국장에 박천복을 각각 선임하고 4월 17일 본 신문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1953년8월5일“주식회사”로재창립하고사장에 박태송을 부사장 겸편집국장에 정두석을 선임하는 등 임원진을 확대 개편하고 지령546호를 발간 수복지구 인양양지역의 소식을 알리는 언론의 매개체 역할을 하였다.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