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정비화

(3) 도로개설및교량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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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412회 작성일 2016-03-2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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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로개설및교량가설


군단에서는“일면작전 일면건설”이라는 표어 아래 도로교량의 복구공사를 우리공병대원들의 손만으로서 속속 완성하였다. 양양읍 앞쪽으로 흐르는 남대천에는 우리 공병대 1101부대의 혈한(血汗: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양양교가 가교되었다. 300m에달하는이교량이야말로우리나라에있어서군용교량으로써 최초의 가설이요 최장의 교량이다. 자랑할 만한 우리 공병대의 특출한 기술은 가교공사에 있어서도 개가를 올리고 있다. 이에 따른 복구사례를 살펴보면 양양읍내의관문인양양남대천교량가설에대해 다음과같이증언하였다.


“양양 남대천 교량은 일제가 놓은 목교였으나 6·25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교량은 절단되어 통행할 수 없었다. 그러자 지금의 여성회관쪽에임시남대천교를가설하여사용하였다. 나는양양목교 가설당시(1952년)에 약관(弱冠)인 23세에 공병소위로 임관되었다.
임관되자 배속부대는 1101야전공병단 102대대 양양대교 건설현장 이었다. 당시 공사 감독은 전 공병단장인 서윤택 대령이었고, 공사 현장에는 병력 30∼40여 명이 고작이었다. 교량공사에 필요한 자재 수급은육군제1801부대에서지원되었다. 특수장비는크레인, 컴프레서, 불도저, 발전기, 용접기등이었는데601경장비부대에서지원됐다. 공사방법은 목재에 방부제를 발라 파일을 박고그위에 교각을세웠는데 공사기간은 1952년 여
름-초겨울까지 약 3개월간 밤낮없이공사를진행하여 단기간내에300여m나되 는긴교량을준공하게되었다.”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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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남대천 목교 전경>


그리고 동 부대(1101)에서는 원암에서부터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이르는 구간도로32km를새로개설하였는데동도로는일찍이일정때3년9개월이나걸리면서도개통을보지못하던도 로를 양양군민들과 군부대가 협력하여 완료하였는데, 공병부대에서는새로운기술과장비를제 공하고 양양주민들은 인력동원에 적극 동참하여 착공 6개월 만에 난공사 구간을 완공 개통함으로써 종전보다40km를 단축할 수있었다.
도로의 명칭은 당시 군부에서 충통로(忠通路)라 명명(命名)49)하였는데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미시령 옛 도로 정상의 암반에는 충통(忠通) 4284년(1951) 10 월일1101야전공병단이라고한각자(刻字)가또렷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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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 고갯길 충통 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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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양재억(남, 85세, 양양읍 남문1리) 남대천 교량공사 당시 공병소대장, 면담( 2015. 8. 10)
49) 『현산문화』제23호(양양문화원, 2011. 12. 28, pp. 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