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 역사와 문화재

양양의 역사와 문화재 목록
    양양고을의 사대부가문의 학자들이 고대로부터 전래되는 문화전통을 계승하면서 상호간 친목을 돈독히 하고자 영조 36년(1761) 11월 낙산사 승방에서 기구회를 결성 합의 선포하고 함평후인 이형익이 서문(序文)하였으며 지금까지 창회의 후손들이 이 회를 계승하고 매…
    영혈사는 양양읍 화일리 323번지의 설악산 관모봉 아래에 위치하며 신라 신문왕 9년(689)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조선 숙종 16년(1690)에 취원대사(聚遠大師)가 중건하고 영천(靈泉)이라 개칭하였으며, 숙종 42년(1716)에는 학천대사(鶴天大師)가 사찰…
    이 불상은 삼층석탑과 함께 상평초등학교 현서분교 교정에 보존되어 있는데, 원래 이곳에서 동쪽으로 약 200m떨어진 논에 있던 것을 1965년 당시 교장과 주민들에 의해 현재의 위치에 이전되었다.불상은 불두(佛頭)가 결실되는 등 전체적으로 손상이 많으나 대좌의 조…
    이 석탑은 옆에 위치한 석불좌상과 함께 상평초등학교 현서분교 교정에 함께 보존되어 있는데, 단층기단위에 세운 삼층석탑으로 처음 이전 시에는 불상과 나란히 있었으나 1994년 진입로 설치를 위하여 뒤로 4m정도를 옮겼는데, 탑재를 옮기는 과정에서 석탑 표면의 여러…
    양양군 남단부에 위치한 현남면 입암리를 중심으로 화상천이 흐르고 화상천을 발상지로 한 유역에는 들판이 펼쳐져 상하 좌우로 예닐곱 촌락이 형성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수동골은 서로 인접하여 마을이 형성된 관계로 예부터 늘 왕래 하며 농경과 관혼상제 등을 함께하는 이…
    ‘상복골 농요’는 송천 주변의 좁은 들이나 골짜기의 다락논에서 주로 불려지던 산간지방의 농요로서 가락은 정적이며 사설은 지역의 명소나 명물들을 등장시킨 통속적이고 해학적이다. 권농을 중심으로 한 충효애향 근면과 애정 그리고 사랑을 담은 내용이 많다.고려초부터 집…
    예전에 나라에서 경북궁을 중건하기 위해 목재를 전국적으로 수집하고 있을 때였다. 양양과 강릉에서도 황장목을 베기 위해 부역을 하였는데 공교롭게도 현북 어성전과 연곡 삼산리 경계에 큰 황장목이 있어 베었는데 그 나무가 경계선에 놓이게 되자 이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불리는 고인돌은 크고 평평한 바위를 몇 개의 바위로 괴어 놓은 고대의 거석 구조물로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이다. 양양지역에서 지금까지 발굴되어 남아있는 고인돌은 모두 8기인데, 그중 대표적으로 서면 범부리의 고인돌의 보전실태는 다음…
    손양면 가평리에 있는 작은 산으로 이곳에 올라 발을 구르면 북소리와 흡사한“쿵쿵”소리가 난다하며 쿵쿵산으로 불려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하늘나라 옥황상제의 시중을 드는 동자가 선과 악을 구별 해주는 신기한 북을 가지고 놀다가 실수로 북을 인간세상에 떨어뜨렸는데…
    동명서원은 조선 인조 6년(1628) 조위한 양양부사가 양양읍 조산리에 건립하였다. 원래 고려말의 충신이었던 조인벽 선생의 위패를 배향하였으나 후에 그의 넷째아들 조사(祖師)의 위패로 조인벽의 6세손인 조정(趙貞)의 위패로 함께 모시게 되었다.처음 창건은 조산리…
    소중하고 자랑스러운양양의 역사와 문화재펴낸날 _ 2017년 7월펴낸곳 _ 양양문화원 033) 671-8762만든곳 _ 대양프리컴 033) 257-3400※ 본 책자에 실린 모든 이미지의 복제 및 무단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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