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 역사와 문화재

양양의 문화재 - 보물 제1723호 양양 낙산사 해수관음 공중사리탑·비 및 사리장엄구 일괄

페이지 정보

조회 1,317회 작성일 2017-09-19 09:54

본문

36.jpg

① 해수관음공중사리탑
조선 숙종 9년(1683) 낙산사 관음굴[觀音窟:홍련암] 불상을 개금하여 새로 모실 때 상서로운 빛과 향기가 법당에 가득 차더니 공중에서 밝은 구슬 한 알이 탁자에 떨어졌다.

유리와 같이 깨끗하고 보배와 같이 밝게 빛나는 구슬이었다. 그 이전 광해군 11년(1619)에도 관음굴 중건을 마치고 상량하는 날 파랑새가 날아오르면서 울었다. 의상이 관음굴에서 동해 용왕으로부터 여의보주를 받은 것까지 하면 이러한 이적(異蹟)은 세 번째이다.

석겸(釋謙)스님은 이 구슬을 봉안하기 위해 숙종18년 (1692) 공중사리탑을 세웠다. 8각원당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부도 탑이다. 전체 높이는 3.55m이고 각 부재는 흠을 파서 끼우도록 되었으며, 탑신은 구형(球形)이며 옥개는 8각인데 상륜부는 앙련(仰蓮)과 복발 (覆鉢), 보륜(寶輪), 보주(寶珠)등을 하나로 조각하였다.



37-1.jpg

② 해수관음공중사리탑 비
낙산사 해수관음공중사리탑(숙종18년 1692)을 세우게 된 내력과 관음의 영험을 기록한 비문이다.

비문에는 일찍이 신라 의상과 원효가 친견했던 관음도량임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광해군 11년(1619)에 관음상을 봉안한 전각이 중건되었는데 숙종 9년(1683) 관음상 색이 바래서 개금할 때 하늘에서 명주(明珠) 하나가 떨어져 이를 봉안하여 탑을 만들었다.

이에 연유하여 비의 이름을 해수관음공중사리비 즉 “바다의 관음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신 사리를 봉안한 비”라 한 것이다.

숙종 19년(1693) 가선 대부 강원도방어사 겸 춘천도호부사 이현석(李玄錫)이 비문의 글을 짓고 다음해인 숙종 20년 (1694)에 이 비를 세웠다.



37-2.jpg

③ 사리장엄구 일괄
2005년 4월 동해안에서 일어난 산불로 천년 고찰인 낙산사가 화마(火魔)를 입었을 때 기울 어졌던 해수관음공중사리탑을 복구하던 2006년 4월 28일 사리탑을 해체 보수하던 중 탑신 윗면 원형 사리공 안에서 진신사리가 봉안된 사리장엄구 일괄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 노란색 비단 보자기에 싸인 원형 청동합 안에“강희(康熙) 31년”으로 적힌 연기(緣記)가 들어 있어 숙종 18년인 1692년에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리장엄구는 청동합, 은합, 금합, 호박사리병, 사리호보자기, 금합 겹보자기, 금합 홑보자기, 은합 겹보자기 등과 강희 31년경 조탑시주질, 대중질, 진언문의 문서들이 청동합 안에 봉안되어 있다.

이 사리장엄구는 해수관음공중사리탑,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와 함께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제1723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