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시기 양양군민이 겪은 이야기 Ⅱ

견불리 조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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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64회 작성일 2018-02-2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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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병제 (남, 79세, 현남면 견불리)
■ 면담일 : 2017.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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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잔병에게 잡혀 죽었다가 되살아나 오래도록 살았던 사람도 있었다.


국군이 진격했을 때 북으로 미처 들어가지 못한 인민군패잔병들이 산 속으로 들어가 밤으로 마을로 내려와 먹을 것도 훔쳐가고 원한이 있는 주민을 잡아 패고 죽이기도 했는데 그때 죽었다고 버린 사람이 살아나 얼마전까지 오래 도록 산 사람도 있다.
그때 한청사람들은 숨어있는 패잔병들을 잡으러 보초도 섰지만 야간을 틈타 패잔병들이 내려와 식량을 빼앗고 주민들에게 짐까지 지켜서 산속으로 가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밖으로 나갔다가 우연히 공비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 공비가 나를 보고“야 이놈아 들어가! 너 누구야! 너 안들어가!”하니 13살밖에 안된 어린나이에 너무 무서워 공포에 떨었다.
또 그 공비들이 마을 구장도 잡아 죽이려는 기미를 마을에서 사전에 알아채고 대피하여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 양재기와 보자기를 들고 처량한 모습으로 밥을 얻으러 다녔다.


1 ․ 4후퇴가 시작되며 국군이 퇴각하면서 무조건 피란을 나가라고 했다.
그때 나는 우리 집이 불타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아랫동네 1.2반은 불에 타고 윗동네 3.4반은 집이 안탔는데 인민군이 그 곳에 주둔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미군 폭격기가 거기에도 휘발유를 뿌려 몇 집이 불에 탔다.

우리 식구들은 억수같이 쏟아지는 눈 맞으면서 강릉을 지나 피란민 발걸음이 조금 드믄 삼척까지 가서 잠은 빈 집에서 자고 끌고 가던 암소가 삼척에서 새끼를 낳아 쌀 6말과 바꾸어 12명의 식구가 먹고 살았다.

식구가 많다보니 얼마 후 쌀이 떨어져 할 수 없이 남의 집에 가서 일해주고 곡식을 얻어다 먹었다. 먹을 게 없으니 때로는 장질부사 병을 앓는 환자가 먹던 밥도 먹어도 병이 걸리지 않았고, 양재기와 또는 보자기를 들고 남의 집 문턱에 가서 처량한 모습으로 “밥 좀 주세요!” 하며 구걸을 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밥을 얻어먹으며 추위도 보내고 어느덧 3월이 되어 집에 들어오니 집은 타고 없고 구들장은 남아 있어 콩 가리를 만들듯이 나뭇가지나 갈대를 베어 지붕을 만들고 짐승처럼 초막에서 살았다. 피란을 나가기 전에 묻어 두었던 곡식을 파내어 먹으며 농사를 지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