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문화30호

- 3월 : 조선시대 양양부 상운도 찰방(祥雲道察訪)은 동북방면 교통중심기관으로 15개 속역을 관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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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80회 작성일 2019-01-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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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헌을통한상운도위상(祥雲道位相)을알아보다.


상운도(祥雲道)는 고려시대에 명주도(溟州道)의 관할이었으나, 조선전기 세종 연간에는 대창도(大昌道)에 소속되었다.
이후 세조 8년(1462)에 상운도로 독립되어 동북 방면으로 오가는 16개의 속역(屬驛) 중 상운역을 본역(本驛)으로 하여 양양(襄陽)-간성(杆城)-고성(高城)-통천(通川)-흡곡(●谷)의 교통로를 관할하는 역도 체제(驛道體制)로써 역승(驛丞)이 관할하다가, 중종 30년(1535) 이후에는 찰방(察訪)이 파견되어 역무를 관장하였다.
역(驛)은 역관(驛館)·역참(驛站)·우역(郵驛)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는데 찰방의 역무(驛務)는 주로 중앙과 지방관아 사이의 공문서를 전달하고 관수물자를 운송하며 사신왕래에 따른 숙박편의 등을 제공하는 한편 교통로상의 지위를 이용하여 정보를 수집 보고하기도했다.
또한 역은 대략 30리마다 설치되어 역마(驛馬)와 숙박시설(宿泊施設)을 구비하고 출장관원들에게 이용 편의를 제공 하였는데, 반드시 징표로 마패(馬牌)를 제시하여야한다. 그리고 일반 여행자들의 편의를 위해 교통의 요지 또는 인가가 적은 곳에는 국가가 운영하는 원(院)을 설치했는데, 다수 서민들은 사사로이 운영하는 주막(酒幕)을 이용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양양도호부 역원조(驛院條)에“상운역(祥雲驛)은 부 남쪽 25리에 있다. 본도(本道)를 잇는 속역(屬驛)이 15인데, 연창(連倉)ㆍ오색(五色)ㆍ강선(降仙)ㆍ인구(麟丘)ㆍ죽포(竹苞)ㆍ청간(淸澗)ㆍ운근(雲根)ㆍ명파(明波)ㆍ대강(大康)ㆍ고잠(高岑)ㆍ양진(養珍)ㆍ조진(朝珍)ㆍ등로(登路)ㆍ거풍(巨●)ㆍ정덕(貞德)이다. 승(丞) 1인이 있다.”고 했다. 그 후 오색역(五色驛)은 미시파령(彌時坡嶺)의 길이 열리면서 폐쇄하고 간성군 원암역(元岩驛)으로 옮겼지만 상운도 속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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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부 소재 4개역 분포도





양양부소재역원(驛院)에대한실태를살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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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면 연창리의 상운관 위치와 상운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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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선역 터



『여지도서』와『관동읍지』에 역이 소재한 마을의 이름은‘상운역리·연창역리·인구역리’라 하였는데 강선역리는 없고‘강선역’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상운도(祥雲道)에는 역승(驛丞)의 근무처인 상운관(祥雲館)이 있었는데, 현종12년(1671년)에 역승 송기태(宋基泰, 의암 송시열의 양자)가 길지인 연창역리로 역관을 옮기고 상운역화풍관(祥雲驛和風館)이라 편액(扁額)하였다. 그 후 2회에 걸쳐 이전하였는데, 경종 3년(1723)에 찰방 엄한중(嚴漢重)이 관우(館宇)를 옮기고 당명(堂名)을 휼운당(●雲堂)으로, 1824년에는 찰방 박종언(朴宗彦)이 다시 짓고 와선당(臥仙堂)이라 이름하고 외청사(外廳事)로 하였다.
강선역(降仙驛) 관문에서 북쪽 20리 거리에 있다. 대마 2필, 복마 4필, 역리 192명, 역노 7명, 역비 8명이다. 연창역(連倉驛) 관문에서 동쪽 5리 거리에 있으며, 찰방(察訪)의 우관(郵館)이 있는데, 대마 3필, 복마 8필, 역리 270명, 역노 130명, 역비 70명이다. 상운역(祥雲驛) 관문에서 남쪽 20리 거리에 있다. 대마(大馬) 3필(匹), 복마(卜馬) 8필(匹), 역리(驛吏) 154명, 역노(驛奴) 30명, 역비(驛婢) 29명이다. 인구역(麟丘驛) 관문에서 남쪽 50리 거리에 있다. 대마 2필, 복마 3필, 역리 70명, 역노81명, 역비 61명이다.



양양부역(驛)에는시인묵객들이남긴시문(詩文)이있다.



이 지역 역(驛)에는 많은 관리와 시인묵객들이 글을 남겼는데 대표적 인물들이 추강 남효온·희암 채팽윤·우암 송시열·삼연 김창흡·해좌 정범조 등이며 35편의 시문이 현존한다. 선조의 셋째 서녀(庶女) 정숙옹주(貞淑翁主)의 남편 낙전당 신익성(樂全堂申翊聖)이 남긴 상운역 시 한편을 소개한다.


祥雲驛畔萬株松/상운역반만주송/상운역 주변의 만 그루 소나무
松外滄溟浪作峯/송외창명랑작봉/소나무 밖 큰 바다 파도 산을 이루네
醉倚松根明月夜/취의송근명월야/취해 소나무 뿌리에 기대인 밝은 달 밤
蓬萊笙鶴●相逢/봉래생학당상봉/봉래산 학 탄 신선 행여 만나려나.


이후 고종 33년(1896) 1월 18일 칙령 제9호“각 역의 찰방과 역속의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모두 철폐되어 지금은 흔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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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마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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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운역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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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창역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