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3.1만세 운동사

[부록/화보] 3) 주요 만세운동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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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30회 작성일 2019-10-2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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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임천리 마을

이석범 선생은 유림 10명과 함께, 고종 인산에 참여 후 독립선언서를 몰래 숨겨와, 문중 이교완의 집에서 머물면서,양양3‧1만세운동을 계획한 마을로서,4월3일 군수 이동혁에게 탐지되어,이석범 선생을 비롯한 주모자22명이 체포되고,인쇄기 및 태극기374매가 압수되었던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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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성내리 곳집
조화벽이 버선목에 숨겨온 독립선언서를 양양감리교회 청년회 김필선 등과 인적이 드문 성내리 47번지 뒷산에 있는 곳집에서,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였는데,이때 조화벽도 86매를 만들었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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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거마리 곳집
년 년 일임천리에서 1919 4 3 태극기를 제작하다 발각되자 거마리 김종태 집으로 본부를 옮긴 다음 김종옥 집 뒤에 있는 곳집에서 밤새도록 태극기를 제작했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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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양양시장 모습
양양 장날이던 1919년4월4일양 양,서면면, 손양면의 군중들이 만세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4000여명이 집결하여 만세를 불렀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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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양양경찰서 터
1919년4월4일함홍기,권병연 열사는 일본경찰의 일본도로, 김학구 열사가 일본경찰의 총탄에 의하여 순직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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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남대천 목교
1919년4월4일손양면 만세군중이 일본경찰의 저지를 물리치고 건넜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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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동운교 자리
손양면 만세군중이 남대천 목교를 지나 이 동운교(현재 양양산림조합 앞 교차로 지점에 있었던 다리)를 경유하여 양양시장과 양양경찰서로 진입하였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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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강현면 모습
4월5일~4월6일에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옛 강현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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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식을 거행한 물치 장터
물치 장날이던4월5일500여명의 만세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불렀으며,
4월6일에도 양양읍내 장터로 집결하는 양양, 손양서, 면 만세군중과 합세하기 위하여 모였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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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포 주재소 터
4월5일물치장터에 운집했던 강현면 만세군중과 도천면민이 합세한 약1000여명의 군중들이 일본경찰의 굴복과
사죄를 받았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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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도천면 사무소 터
당시 양 양 군 도천면 사무소는 대포항에 소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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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구 장례만세운동을 한 장소였던 현 서면 사무소
년 월 일서면의농민들이 1919 4 6 4일 경찰서 앞에서 일경의 총탄에 숨진 김학구의 장례식을 거행하면서 일제에 반항하여 장례만세운동을 한 서면사무소 터의 현 서면 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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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경이 저지선을 설치한 장소였던 현 연창리 삼거리
일본 헌병과 경찰이 저지선을 새끼줄로 설치하고 통행을 제지하던 터로4월6일 강현면과 도천면 양 양 면800여명의 만세군중이 양양읍내 집결지를 향하여 행진 중 연창리 대미소 앞에서 일군경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저지선이던 새끼줄을 끊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집결지인 양양장터로 향했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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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사문리 주재소 터 자리
4월9일현북면주민 1000여명의 군중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관 고개(만세고개)를 넘어 이 기사문주재소로 행진하다가 일본 수비대에게 총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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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비대 병력이 매복하였던 장소인 현 기사문리 관 고개
월 4 9일 기사문리 관 고개(만세고개)에서 일본 수비대의 헌병과 경찰이 매복하여 총격을 가하여 만세군중9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던 사건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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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낙산사 원통보전(대정원년1912년)
낙산사에 주소를 두고 3‧1독립만세 운동의 민족대표인 만해 한용운선생의 민족정신에 감읍한 낙산사 스님들이4월7일 오후 8시에 범종을 울리는 것을 신호로 오봉산 정상에 올라 횃불을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대한독립을 염원하였던 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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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양양 감리교회 모습(1956년)
당시 양 양감리교회5대 목사인 김영학과 조영순(조화벽 지사의 부친) 전도사에게 항일정신과 자주독립에 필요성 등의 신앙지도를 전수받은 김필선을 위시한 교회청년회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던 터의 옛 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