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3.1만세 운동사

(2)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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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90회 작성일 2019-11-0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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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서 말한 김학구(金學九)의 순국 및 장례식에서의 처절한 슬픈 광경과 일제의 탄압에격분되 어 폭발한 서면 지역 상평리 일대 농민 100여 명이 7일 저녁에면사무 소를 습격하여 창문을 깨고 목 놓아 울면서“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또 외치는 소리가 남대천 건너 북평리 까지 들렸다.


당시 강원도장관의 전화보고문은 다음과 같다.


“7일야 양양군 서면사무소(七日夜襄陽郡西面事務所)에약 백명(約百名)의 폭민 내습(暴民來襲)하여 창문(窓門)을파괴(破壞)하고 면 직원(職員)에대(對)하여폭행(暴行) 을 가(加)하다, 그런데 중요서류(重要書類)는 팔일중 군청보관(八日中郡廳保管)을 탁(托)하여 1시 면사무(一時面事務)를 중지(中止)하다.”14)


그 후 4월 11일 강원도장관의 보고를 보면 사흘 동안 면사무가 중지되었다.
이때 유리창을 깨고 면서기를 폭행하던 주동급 김동섭(金東燮)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또 4월 4일 양양경찰서에서 만세운동을 하다가 총상을 입은 최학길(崔學吉, 명옥)도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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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국사편찬위원회,한국독립운동사Ⅱ,7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