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3.1만세 운동사

(1)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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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47회 작성일 2019-11-0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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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독자적으로 일으킨 김학구의 장례 만세운동이었다.
김학구(金學九)는 원래 강현면 침교리 사람이었는데, 서면 상평리 권성심(權聖心)에게 데릴사위로 와서 처가살이를 하였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용감한 청년이었는데 양양 장날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일경이 발포한 총탄에 경찰서 마당에서 숨졌다. 유혈이 낭자한 시신을 경찰서 뒷마당에 옮겨놓자, 서면 책임자 노용수가 “끌고 가자”라고 소리치자 이형우가 업어 자기 집 뒷마루 밑에 멍석으로 덮어 안치했다가 다음날 가족이 찾아가 장례를 지내며 나타난 특수한 만세운동으로, 나라를 잃은 민족의 눈물을 그대로 전해주는 사건이었다.
서면 상평리의 주민은 대부분이 농민이었고 만세운동은 농사철이 한창 바쁜 때 일어났다. 그러나 만세를 열심히 부르면 일제의 탄압에서 벗어나 독립을 할 수 있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 마을에 서도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했다.김학구의 장례식은3일장으로 치렀는데 통곡의 행렬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상여를 메고 서면사무소까지 갔으나 상여가 도착하기 전에격분 한 마을주민 100여 명이 먼저와 만세를 부르면서 면사무소를 습격하자 면장과 면 직원들은 도망쳐 버렸다.
구룡령 너머 서면 조개리의 지석화(池石化)는 만세를 부르는 군중이 먹을 음식100여 명분을 준비하여 상평리로 운반하여 합세하려다 일경에 체포되었다.

마을 주민들은“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상여를 멘 사람들은 상엿소리로 원통한 영혼을 위로하다가‘조선 독립 만세’를 또 부르며 울부짖었다. 김학구(金學九)의 상여는 상평리 면사무소를 떠나 산길을 따라 30여리 되는 그의 고향 침교리로 가던 중 강현면 물갑리 고개에이르 렀을 때 강현면 침교리에서도 상여를 꾸며 놓고 이곳에 서 기다리고 있었다.
관(棺)이 서면의 상여에서 강현면의 상여로 옮겨질 때, 마침 양양장터로 가던 강현면과 도천면의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을 목격하고 함께 통곡하니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한다.
후일 중도문리 이종인의 증언에의하 면 “어느 동기가 죽은들 그렇게 눈물이 나겠습니까?”라며 눈시울을 적시며, 침교리에서 장례를 지냈지만 일경은 산림법을 위반하여 묘를 썼다고 하여 다시 파내어 공동묘지로 옮겼다고 한다.” 이에울분 을 참지 못한 마을 사람들은 다음날7일 면사무소를 파괴하는 격렬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