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문화32호

9월 - 동해북부선의 종착지 양양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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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22회 작성일 2021-02-2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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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양역 개통
동해북부선은 지금으로부터 83년 전인 일제강점기에 강원도 안변에서 양양을 잇던 철도 노선으로, 1937년 12월 1일 안변에서 양양까지 개통하고 나머지 구간은 공사가 계속 진행되었으나 완공하지 못하고 8·15해방을 맞이하였다.
당시 양양군 내의 역은 공현진역, 문암역, 천진역, 속초역, 대포역, 낙산사역을 지나 양양역이 종착역이었다.
※ 당시 낙산사역은 강현면 정암리 현 코레일연수원 자리 인접 북쪽에 있었다.


<동해북부선 철로개설 현황>
 
 개설구간 개설연월일  개설거리 소요시간 
 안변 ~ 흡곡
 1929. 09. 11
 31.4km
 0시간 58분
 흡곡 ~ 통천
 1931. 07. 21
 29.6km
 0시간 32분
 통천 ~ 두백
 1932. 05. 21
 14.7km
 1시간 13분
 두백 ~ 장전
 1932. 08. 01
 17.5km
 0시간 35분
 장전 ~ 외금강
 1932. 09. 16
 7.8km
 0시간 19분
 외금강 ~ 고성
 1932. 11. 01
 10.4km
 0시간 33분
 고성 ~ 간성
 1935. 11. 01
 39.3km
 1시간 10분
 간성 ~ 양양  1937. 12. 01  41.9km  1시간 25분

※ 이 자료는 1944.10.1. 개정된 양양(오전 04시 25분 출발)에서 안변간 상행선을 운행한 제774호 열차의 소요시간이다.
 
2. 양양역은 동해북부선 최남단 종착역이었다.
양양역이 개통되자 동해안 지역의 강릉, 삼척, 울진 등 양양 이남 사람들이 경성(서울)을 가려고 모여들었고, 금강산을 구경하러 가려는 사람들, 장사하러 다니는 사람들, 유학생 등으로 붐볐으며, 역사(驛舍:대합실) 주변에는 여관과 식당이 즐비했고 역 광장과 주변에는 항상 활기가 넘치는 장소가 되었다.
역 광장 앞의 현 7번국도(동해대로) 건너편에 위치하였던 당시 경찰주재소 옆에는 여러 동의 여관이 있었지만, 타지방에서 온 여행객들은 역 주변의 숙박시설이 모자라 양양읍내 여관에서 묵었다고 한다.
열차 운행은 오전 5시 양양역을 출발하는 첫 차를 시작으로 오전 11시, 오후 4시, 오후 6시 등 하루 4차례 운행했었다.
당시 양양에서 생산된 목재도 양양역에서 반출되었으며, 양양광업소에서 채굴한 철광석은 기차에 실려 함경북도 청진제철소로 운송되었다 한다.
8·15 해방 후에도 철도는 북한 체제하에서도 계속 운행되었으며 6·25 한국전쟁으로 운행이 중단된 1950년까지 14년간 운행되어 오다가 양양역 역사(驛舍)를 비롯한 모든 철도 시설이 한국전쟁 당시 완전히 파괴되었다.

<구간 운행요금>
 운행구간 운행거리  구간 정착역  소요시간  운행요금   
         2등석 3등석 
 양양 ~ 원산
 238.8 km
 30역  7시간 35분
 14원 50전
 6원 50전
 양양 ~ 안변
 192.6 km
 26역  6시간 35분
 13원
 6원
 양양 ~ 간성  41.9 km  6역  1시간 25분  3원 30전  1원 50전

 

3. 양양역의 규모와 남아있는 자취들
1937년 12월 1일 개통된 동해북부선의 양양역은 현재 역사(驛舍:대합실), 플랫폼, 관리사무소, 철광석 집하장인 조구통, 어름창고 등은 아직도 기초 시멘트 구조물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양양역에 인접한 산(뱀째산)위에는 기차 운행당시에 사용하려던 약 140여 톤의 물을 저장 할 수 있는 물탱크시설은 아직도 원형 그대로 남아있고, 양양광산에서 철광석을 실어 나르던 삭도(속칭:솔개미차)시설 탑이 있었다고 한다.
그 산 아래에는 삭도시설 사무소와 그리고 기차에서 온수를 사용하려고 물을 데우던 가마시설과 물을 용이하게 공급하기 위하여 급수탑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 옆에는 우물이 있었다.
증기기관차에서 사용하는 석탄 야적장과 석탄재 하치장이 있었으며, 우차(牛車)로 운반되어 온 목재 야적장이 있었는데, 이때 땔감으로 사용하려고 솔 딱지(소나무 껍질)를 벗기려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북새통을 이뤘으니 당시 서민 가정의 어려웠던 연료 사정을 짐작케 한다.
역내에 주요시설인 기관차를 수리 점검하는 기관고(機關庫)가 있었으며, 양양역이 종착역이므로 기관차의 앞뒤 방향을 돌리는 회전대가 있었다.
단층 건물로 지어져 있던 양양역에는 역장을 비롯하여 선로반, 기관부 직원 등 100여 명의 인원이 근무했고, 청곡2리에는 역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사용하는 사택도 10여 동이 있었으며, 역 주변에는 여러 동의 창고가 있었다.

<양양역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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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驛舍:대합실) (2) 관리사무소 (3) 플랫폼 (4) 철광석조구통 (5) 물탱크 (6) 변전소 및 어름창고 (7) 사택 10동 (8) 경찰주재소 (9) 여관 3동 (10) 창고 여러동 (11) 삭도사무실 (12) 온수시설 (13) 급수탑 (14) 우물 (15) 삭도시설 (16) 기관고 (17) 기관차 돌리는 곳 (18) 석탄과 석탄재 야적장 (19) 목재야적장
 
 
<양양역 시설물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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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흔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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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흔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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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탱크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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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탱크 입구 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