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문화32호

7월 - 둔전골과 진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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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38회 작성일 2021-02-2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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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둔전골
둔전골은 산자수명한 천혜의 자연 속에 자리하고 있다. 백두대간과 태백산맥의 허리, 양양의 진산 설악산에서 크고 작은 구릉이 동으로 뻗어내려 마치 병풍을 펼쳐 놓은 듯 아늑하고 포근한 골짜기이다. 멀리 앞쪽으로는 맑고 푸른 동해가 있고 설악산 계곡에서 발원하는 계곡수는 그 끝자락에 모여서 하천을 이루고 물치천이 되어 동해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설악산 계곡이 넓어지기 시작하는곳에 고려시대부터 나라에서 둔전을 경영하던 곳 이라 이름 붙여진 둔전리 마을이 있으며 마을 위쪽에 높이가 41.1m 에 길이가 172m 이고 총저수량이 144만 톤에 달하는 설악 저수지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 영북지사에서 관리하는 1980년도에 준공된 이 저수지는 강현면의 광활한 진미뜰과 회룡지역의 논농사에 꼭 필요한 농업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관산 중턱에 있는 진전사에서 저수지를 내려다보면 앞뜰의 연못처럼 보인다.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은 둔전골을 감싸고 북으로 화채봉과 송암산을 거쳐 진전사가 있는 관산으로 내려오고 남쪽으로는 관모산을 거쳐 성치능선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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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저수지>


또한 이 마을에는 통일신라시대 이래로 명산대천에 국가에서 소사의 예를 올리던 설악산 재단인명월단이 있었다고 전해진다(삼국사기 제32권 잡지 제1)
그 뿐 아니라 신라 신문왕 11년(691년) 창건된 청련암과 조선시대 창건된 학소암 등의 암자가 있었으며 향산비폭, 여귀소, 고메기폭포 등의 명소가 있다.
명산 설악으로 가는 길은 두 길이 있다. 둔전리 마을에서 관모산을 끼고 오르는 호랑콧등 길과 아홉 개의 계곡을 건너야하는 아홉물나드리(아홉싸리 라고도 한다)로 대청봉 아래 까지 간 후, 오른쪽의 완만한 화채봉길을 이용해서 돌아서 가거나 아니면 가파른 산길을 이용해서 곧바로 가는 길이다.
곧바로 오르면 중간쯤에 높이 20여m로 100여명이 쉴 수 있는 바위굴인 대궐모듬암이 나오며 이곳에서 30여분을 올라가면 양양군 서면 오색리 산 1번지 1,708m의 대청봉에 이르게 된다.

 

■ 진전사(陳田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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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전사 금당(적광보전)>


진전사는 통일신라시대 8세기말에는 창건되어 있어서 도의선사(道義禪師)가 당으로부터 귀국한 헌덕왕 13년(821년)에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찰이었으며 사찰 중에서도 근본 대도장이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선종(禪宗)을 크게 일으키려던 도의선사가 주석(駐錫)한 곳이 여기요 또 일연선사가 체도(剃度)한 선문이 이곳이다. 그러므로 진전사는 8세기부터 14~15세기까지 장구하게 선종의 사찰로 법통을 전등(傳燈)하였다.
도의에 의하여 개산(開山)된 가지산문(迦智山門)은 일연선사가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고려 고종6년(1219년) 당시까지도 진전사라는 사명을 가지고 존속했으나 어느 시기엔가 폐사된 채로 둔전사라 불리어져 조선후기와 일제강점기까지도 인식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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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전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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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선사 부도>


이렇게 둔전사로 알려져 왔던 사지(寺址)는 1965년 조사 시 신영훈이「陳田」이라 새겨진 기와장을 수습하고, 1975년 단국대학교 박물관에서 30여개의「陳田」·「陳陳田田」이라 새겨진 기와장을 수습하면서 진전사의 위치가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사지는 도의선사와 관련하여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남종선(南宗禪)을 신라에 최초로 전래한 역사성과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宗祖)인 도의선사와 연계한 사상성이 부각되는 사지로 인정받게 되었다.
진전사는 통일신라 말에 창건되어 고려 예종8년(1113) 및 충렬왕3년(1299)에 2차례, 조선 세조13년(1467년)의 중수 등 모두 3차례에 걸친 중수사실이 확인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진전사의 중창복원 계획이 구체화되어 강원문화재연구소에서 현지의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한 후 건물 배치와 건축물의 설계도면이 작성되고, 건축허가를 받아 2004년부터 금당(金堂)의 건립이 진행되어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의 골기와집이 완성되었고 서쪽편으로 길게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요사체 건물이 배치되었다.
진전사지는 3층 석탑이 있는 지역과 도의선사의 부도(浮屠)가 있는 지역으로 구분된다.
둔전리 마을의 서북쪽에 솟은 관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진전사지에 있는 3층 석탑은 국보 122호로, 도의선사 부도는 보물 439호로, 진전사지는 강원도 기념물 52호로 지정보호 관리되고 있다.
두 지역은 동ㆍ서로 약 600m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으며, 부도지역은 산 중턱에 있다.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른 석탑으로 2층 기단을 갖추고 있으며 상륜부는 노반(露盤)만이 남아있고, 삼층 옥개석 윗면에 직경 10cm, 깊이 10cm의 찰주공(擦住孔)이 남아있다. 이 석탑의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대략 8세기말~9세기 초로 생각되며, 조각기법이 매우 섬세하고 우수하여 신라하대의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삼층석탑은 1968년 완전히 해체하여 정 위치에 복원되었다.
석조부도는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탑신부가 팔각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부는 석탑에서와 같이 사각형 2중 기단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이 부도 역시 흩어진 석재들을 모아 복원함으로서 명실 공히 지정문화재 면모를 갖추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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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 1975년 진전명 출토기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