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북부선 종착지 양양역

1. 증언 <강현면> 최종원 (남.83세) 강현면 강선리 20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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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31회 작성일 2021-03-02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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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증언  <강현면-6명>


▶ 최종원 (남.83세) 강현면 강선리 20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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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원씨 모습


● 외가가 안변이어서 자주기차를 타고 다녔다.

 

  일제 강점기에 연창리에 살았다. 외가가 안변이어서 자주 기차를 타고 안변으로 다녔다. 연창역에서 기차를 타고 안변역을 향하면 얼마나 빠르게 달리는지 땅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안변에는 호수가 있어 파란 호숫가를 거닐면 기분이 아주 좋았고 넓은 사과밭이 있어 사과를 사 먹었다. 당시 사과가 드물어 사과 맛은 참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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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변역사 옛 모습


  그때 기차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머니가 “저 사람들은 강릉 사람인데 양양에 와서 기차를 타고 경성으로 가는 거야” 하고 말씀하셨다. 강릉 사람들도 양양에 와서 기차를 타고 경성으로 갔던 것이다.


● 아버지는 화차 1량을 통째로 빌려 청어장사를 하셨다.

 

  당시 속초에는 청어가 많이 잡혔다. 판매할 곳이 마땅치 않던 때인데 아버지는 속초에서 청어를 사서 화차 1량을 통째로 빌려 청어를 싣고 중국에 가서 팔고 오는 장사를 하셨다. 아버지가 중국 장사를 가시면 한 열흘이 걸려 돌아 오셨다. 우리 형제는 아버지가 장사를 갔다가 올 때를 손곱아 기다리곤 했다. 아버지가 오실 때 과자와 선물을 많이 사오시기 때문이다.

  기차 화물차가 남대천 변까지 가서 서 있었는데 양양 사람들이 동원되어 남대천에서 자갈을 골라서 쌓아 놓으면 화물차에 싣고 북쪽으로 갔다. 북쪽 어디에 기찻길을 닦는데 쓰인다고 하였다.

  또 양양광산에서 솔개미차에 실어온 광석을 연창역에다 쌓아 놓으면 기차가 와서 싣고 갔다. 그 후 광산까지 철도가 놓여 직접 양양철광에서 싣고 갔다.

  설악산에서 나무를 베어 목재를 우차 10여대씩 줄을 지어 싣고 와서 기차 정거장에 쌓아놓았다가 기차로 실어갔고, 소나무에 상처를 내어 송진이 흘러나오면 모으고 관솔(송진)에서 기름을 뽑아내어 드럼통에 담아 역시 기차로 실어갔는데 비행기 연료로 쓰인다고 했다.


● 기차를 타고 양양의 친척집에 심부름도 다녔다.

 

  해방이 되면서 우리는 아버지가 벌어놓은 돈으로 강현면 회룡 벌에 논을 사고 강선리로 이사를 하였다. 자주 양양 친척집에 심부름을 다녔는데 낙산역이 정암2리에 있었는데 기차를 타려고 정거장에 가면 역 마당에 강현면 지역에서 거두어들인 현물세(주로 볏가마니)를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 볏가마니를 기차로 실어갔다.

  때로는 양양까지 걸어도 다녔는데 신작로로 가면 돌아서 가기 때문에 멀지만 기찻길로 가면 지름길이어서 기찻길로 다니기도 했는데 양팔을 벌리고 비행기처럼 기찻길 위를 걸었다. 뛰기도 했는데 기차가 오면 기관사는 욕을 하며 석탄을 나에게 던져 맞기도 했는데 우리는 막 도망갔다.

  우리는 꾀를 내어 철로에 귀를 대면 기차가 멀리서 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미리 기찻길에서 내려서 피했다. 또 못을 기찻길 위에 놓았다가 기차가 지나가면 납작해져 숫돌에 갈아서 칼을 만들어 그 칼로 밤도 깎아먹고 연필도 깎아 여러 가지로 장난감과 놀이감이 되었다.


● 양양역과 낙산역에는 전쟁 물자와 마초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1950년 6월 중순 1주일 동안 기차에 탱크와 자동차, 대포, 연료탱크 등 무기들과 인민군을 많이 싣고 왔다. 양양역에도 물건들이 가득 찼고 낙산역에도 쌓아 놓을 데가 없이 가득했다. 말 먹이(마초)도 산더미처럼 실어다 쌓아놓았다.

  아이들은 못 보던 탱크와 자동차 무기들이 신기하여 구경 다녔다. 우리 마을 사람 들은 인민군들에게 준다고 계란을 걷어다 주었다. 그때 처음 본 앰블런스는 빨간 적십자가 새긴 예쁜 차로 기억에 남는다.

  6·25전쟁이 나고 8월 미군 비행기가 낙산역을 폭격할 때 기름 탱크에 불이 붙었는데 연기가 하늘을 덮었고 옆에 있던 마초가리에 옮겨 붙어 엄청나게 연기가 났고 불이 꺼진 후에 철로가 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기차는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