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북부선 종착지 양양역

1. 증언 <양양읍> 이상경 (남, 83세 / 양양읍 임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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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29회 작성일 2021-03-0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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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증언  <양양읍>


▶ 이상경 (남, 83세 / 양양읍 임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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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중인 이상경씨 모습


● 학도병으로 동원되어 기차를 타고 원산으로 갔다.


  1950년 6·25가 일어나고 인민군대가 낙동강전선까지 밀고 내려간 후 모자라는 병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10여일 후인 7월 7일 양양고급중학교 (현, 양양교육정보도서관) 운동장에서 1,2,3학년 재학생을 모두 소집한 후 학생들의 부모에게 연락도 없이 양양 역에서 기차에 태워 원산 쪽으로 싣고 갔다.

  당시 고급중학교 2학년이던 우리 형님은 서문리에 여러 동창들과 함께 영문도 모르고 문을 닫은 학교에 갔다가 양양역으로 집합해서 인민군대에 징집되어 학도병으로 끌려가게 된 것이다.


● 양양역에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솟았다.

  오전에 양양역에서 기차로 출발하고 약 4~5시간 지난 오후에 양양역이 대규모 함포사격을 받고 있었다.

  하늘에서 시뻘겋게 폭탄이 터지고 양양역 쪽에서 폭격소리와 함께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그때 나는 아버님과 밀밭에서 밀을 베고 있었는데 계속 쏘아대는 함포사격에 놀라 동네사람들과 물이 내려가는 수문 아래로 숨어들었다.


● 나와 누님은 1950년 7월 7일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나중에 형님이 학도병으로 끌려간 줄로 알게 되었으며 같이 갔던 형님의 동창이었던 김기재, 김동준, 김종대씨 등은 어떻게 도망을 나왔는지 돌아왔으나 형님은 끝까지 돌아오지 않아 7월 7일인 그날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게 남아있고 또한 형님이 행방불명된 날이라서 세 살 위인 누님과 함께 지금도 그날을 기리고 있다.


● 철도 레일 위로 수리용 화차가 다녔다.


  임천리 마을 서쪽에 있는 철길에는 선로가 깔려 있었으며 레일위로 사람들이 수리용 화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으므로 인공 때도 기차가 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