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북부선 종착지 양양역

3. 동해북부선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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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32회 작성일 2021-03-0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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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해북부선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


(1) 철도공사중에 토사붕괴로 즉사 (1936. 7. 1 조선중앙일보)

【束草】강원도 양양 문암진사진간(江原道襄陽門岩津沙津間) 동해북부선제15공구 청간리 공사장(淸澗里工事場)에 일하던 강릉군 성산면 금중리(江陵郡城山面金中里)에 본적을 둔 최석고(崔石高/22세)는 지난 22일 작업 중 돌연히 문어져 내린 흙 사태에 치어서 무참히 압사되었다고 한다.


(2) 철도공사인부 산이 문어져 압사 (1937. 10. 13 매일신보)

【江陵】 지난 10월 6일 오후四시경 동해북부선(東海北部線) 철도공사 양양강릉간제18공구(工區) 진전조(津田組)가 양양군 현북면 부근에서 공사를 하는 도중 산이 문어져서 양양군 현북면 중광정리(襄陽郡縣北面中光丁里) 강인렬(姜仁烈/25세)이가 무참하게 치여 죽었는데 본인은 생활 곤란으로 두형제가 인부로 품 파리를 하던 중 그와 같은 참사를 당하였다고 한다.


(3) 양양역 구내에서 동사시 발견 (1938. 3. 11 동아일보)

  지난 7일 밤 양양역 구내에서 동사시(凍死屍) 1명이 발견되어 이를 검시한 결과 홍천군이하 주소불상의 김공진 1명, 김상진 1명(40세)으로 추측되었을 뿐 아직 사인급 전무가 미상하다고 한다.


(4) 양양역에서 열차 탈선 (1938. 3. 15 동아일보)

 <양양특보> 14일 오전 7시 50분 양양역 착 고성역발 화물 3등 열차는 동 7시 40분양양역으로부터 2km의 지점에서 객차 1량이 탈선되어 다행히 승객은 무사하였으나 궤도가 파손되어 5시간 내에는 복구공사 등으로 기차불통이 되게 되었다고 한다.


(5) 동해북부선 일시사고 (1938. 7. 3 매일신보)

【高城】 6월 29일 오전 8시 40분 동해북부선 양양(襄陽)발 원산행 열차 768호는 10시 18분경 거진역(巨進驛)부근에 당도하자 차량의 앞바퀴가 떨어지며 탈선되어 일시 소동 하였으나 다행히 승객과 차체에는 손해가 없었다 하며 약 한 시후 원상을 회복하야 선로를 통과하였는바 원산기관고, 고성분국과, 고성서 에서는 이사고의 원인을 목하조사 중 이라한다.


(6) 『턴넬』내 토사붕괴로 인부3명이매몰 동해북부선 공사장서 (1938. 8. 17 매일신보)

【春川】지난 14일 오전 10시경 양양군손양면도호리(襄陽郡巽陽面道湖里) 동해북부선제18공구철도공사 『턴넬』 속에서 토사(土砂)가 문어져서 인부 3명이 매몰된 것을 청부업자 진전조(津田組)에서 즉시 구조작업에 착수하여 동일 오후 8시에 겨우 구출해 내었는데 세 명중 한명은 즉사하고 두 명은 중상을 당 하였다는바 중상자는 방금 읍내오공의(吳公醫)에게 다려다가 응급수당을 가하고 있는 중이다 사상자의 성명은 아래와 같다.

▲ 사망자 박수원(29세) ▲ 중상자 이재호(23세) 이종학(22세)


(7) 철도 품 팔던 여자 돌에 치여 사망 (1938. 9. 27 동아일보)

  양양군 손양면 밀양리 윤순병의 처 김성녀는 동군 동면 동호리 철도공사장에서 일임 16전(錢)식을 받고 사리(沙利)부수는 품을 팔러 다니던 중 25일 오전 8시경 돌연위에서 깨는 돌이 굴러 내리며 다리와 두부를 치어 즉사하였다 한다.


(8) 9세아 량상(輛傷) 낙산사부근서에서 (1938. 12. 25 동아일보)

  지난 21일 영시 59분 동해북부선 낙산사역발 원산행 제1344호 열차가 막 강현면 물치리 뒤 카브를 진행할 때 그 동리 김덕칠의 셋째아들 기택진(9세)이가 레-일위를 혼자서 통과하다가 치어서 다행히 사망은 하지 않았지만 오른편 다리와 왼팔이 끈기고 두개골이 전부 파상되어 참혹한 형상이 일어나 일대 소동을 일으키었는데 중상이 된아이는 방금 속초항 낙천의원에 입원치료중이나 생명이 위독하다고 한다.


(9) 전과5범 체포 (1942. 7. 22 매일신보)

【襄陽】 전남 무안군 청계리에 본적을 둔 정창균(丁昌均)은 절도전과5범자로 소화(昭 和) 16년 10월에 대구형무소를 출옥한 후 부산, 경성, 원산, 강릉, 삼척 등지를 무대로 삼고 마루보시 운송점 화물을 하반(荷搬)하는 자로서 본월 16일 오전 3시 양양읍내 마루보시 화물차 운반수 태준방(運搬手○泰俊方)에 침입하야 의류 시계 등○백원어치를 절도도주(竊取逃走)한 것을 경찰서원들이 민첩하게 활동하여 양양역에서 체포하였다.


(10) 경금속공장을시찰-소기총독(小磯總督) 양양역에서 귀도에 상정 (1944. 03. 23 매일신보)

【襄陽에서 郭特派員發○】 강원도 내에 있는 여러 광산을 두루 시찰중이든 고이소 총독은 21일 삼척 방면을 시찰로써 이번 여정을 일단 마치고 이날 오후 3시 20분 양양역 발 열차로 귀도에 올랐다.

  이날 오전에 징용학도들이 일하는 ○○공장을 방문하고 곧 이어서 삼정(三正) 경금속공장을 시찰한 후 삼화(三和) 제철소에 이르러 여기서도 “결전은 목전에 닥쳐왔다. 그런데 이 싸움에는 많은 전함과 전차가 필요하다 철을 많이 생산하면 반드시 이 싸움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이기고 지는 열쇠를 잡고 있는 제군은 더 한층 발분하여 최후의 봉공을 하기를 바란다.” 는 격려의 훈시를 하고 오후1시 강릉군청에 이르러 휴식을 한 다음 양양역에서 기차로 귀도에 올랐다. 그런데 고이소 총독은 22일 하루를 쉰 다음 다시 23일에는 춘천지방을 시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