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지방의 제사의식

4. 양양문화제 襄陽文化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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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55회 작성일 2022-03-1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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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양양문화제(襄陽文化祭) - 고치물祭 ‧ 城隍祭



■ 개요(槪要)

▪ 주관(主管) : 양양문화원(襄陽文化院)

▪ 장소(場所) : 고치물샘터 ‧ 성황사

▪ 주신(主神) : 양양성황지신(襄陽城隍之神)

▪ 향사(享祀) : 매년 단오 전후

▪ 준비(準備) : 양양문화원



■ 의미(意味)

양양문화제는 고려 목종 10년(1007)에 양주성(襄州城)을 축성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성황제를 지낸 것이 효시(嚆矢)이다. 그 후부터 매년 양양지방에서는 성황사에 모셔진 성황지신께 유교방식으로 제사하였는데, 고려 때는 주신을 ‘양주성황지신(襄州城隍之神)’이라했고, 조선시대에는 ‘양양성황지신(襄陽城隍之神)’을 모시고, 부민(府民)의 안위와 풍농 풍어, 집안의 태평 등을 기원하는 제례를 봉행하였다.

제례 절차는 먼저 고치물제를 지낸 후에 성황제를 지냈는데, 제주(祭主)는 고치물[서문리 양지마을 샘물]을 마시고, 제수(祭需)를 만들 때도 고치물을 사용하였다. 고치물 샘터는 항상 경비병이 지키고 있었다고 구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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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사>


■ 유래(由來)

1968년도에 군민들의 성미[誠米:신불(神佛)에게 바치는 쌀]로 성황제를 매년 단오 날(5 월 5일)에 제례를 지내왔다. 그 후 향토 고유의 전통문화제를 제정하기 위하여 1979년 2월 5일 현산문화제위원회를 구성하여 전통성을 찾아 전례의 민속 일인 음력 정월 대보름을 제전일(祭典日)로 하여 제1회 현산문화제로 명칭을 정하고 전야제와 본제(本祭) 를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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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성황지신제 진설>

 

그러나 정월 대보름은 계절적으로 범 군민적인 축제 행사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하여 1980년부터 본고장이 기미만세운동 시 지방으로는 가장 치열했던 항쟁지로써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고귀한 희생을 추모하고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하여 3월 1일을 제전일 (祭典日)로 정하여 4회까지 진행하였다.

1983년 제5회부터 이 고장 기미만세운동의 역사성에 바탕을 두어 함홍기(咸鴻基) 의사가 일경의 서장실로 뛰어 들어가 맨손으로 저항하다 장렬하게 순국하면서 우리고장 만세운동에 불을 붙이기 시작한 실질적인 발발일(勃發日)인 4월 4일로 변경하여 제7회부터 제11회까지 거행하였다. 제12회부터는 기후와 농사철을 감안 다시 단오절을 전후하여 일자를 정하도록 하였다.

2016년부터 현산문화제의 현산(峴山)지명은 모화사상(慕華思想)의 잔재임으로 양양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상징적으로 맞지 않아 양양지명과 일치시켜 양양문화 제(襄陽文化祭)로 정착(定着)시켜 전 군민이 화합하는 향토축제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 진행(進行)


▶▷ 고치물 제례


고치물祭 焚香


獻官以下入就位 

謁者引 獻官詣 盥洗位 盥手帨手 

고치물 前 跪 三上香 

執爵 奠爵 獻爵 興 平身 

再拜 獻官 詣 고치물 前 跪 

고치물 飮取 俯伏 興 平身 

獻官以下 參禮員 一同 皆再拜 

鞠躬 拜 興 拜 興 平身 

獻官以下 次出


고치물제 분향


헌관이하입취위 

알자인 헌관예 관세위 관수세수 

고치물 전 궤 삼상향 

집작 전작 헌작 흥 평신 

재배 헌관 예 고치물 전 궤

고치물 음취 부복 흥 평신 

헌관이하 참례원 일동 개재배 

국궁 배 흥 배 흥 평신 

헌관이하 차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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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물제 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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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물제 제례>

 

▶▷ 성황제례


강신례(降神禮)를 행하다.

참신례(參神禮)를 행하다.

초헌례(初獻禮)를 행한다.

아헌례(亞獻禮)를 행한다.

종헌례(終獻禮)를 행한다.

음복례(飮福禮)를 행한다.

사신례(辭神禮)를 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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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문화제 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