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지방의 제사의식

1. 동해신묘제 東海神廟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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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79회 작성일 2022-03-11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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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해신묘제(東海神廟祭)



■ 개요(槪要)

▪ 주관(主管) : 양양군수(襄陽郡守))

▪ 장소(場所) : 동해신묘(東海神廟)

▪ 주신(主神) : 동해지신(東海之神)

▪ 향사(享祀) : 매년 별제(別祭) · 상제(常祭)

▪ 준비(準備) : 양양군청



■ 의미(意味)

양양의 동해신묘제(東海神廟祭)는 동해지신(東海之神)에게 국토수호, 국태민안과 풍농 풍어를 기원했던 곳으로 왕(王)이 내린 향(香)과 축(祝)으로 매년 새해는 별제(別祭)를 2 월과 8월에 상제(常祭)를 봉행하였다. 그러나 시대 변천에 따라 한때 주신을 동해광덕 용왕지신(東海廣德龍王之神)을 모셨으나, 고증(考證)을 바탕으로 2019년부터 위패(位牌) 에 동해지신(東海之神)으로 고쳐 제례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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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신묘>



■ 유래(由來)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통치이념으로 매우 중시하여 왕이 직접 관리하며 강화되었다.

조선 태종 14년(1414) 8월 예조에서는 “동해는 양양, 남해는 나주, 서해는 풍천으로 정하고 치제(致祭)를 관(官)에서 주관하였다.”고 했으며. 조선의 제전(祭典)을 대 ․ 중 ․ 소사로 등급을 정하였고, 악 · 해 · 독(嶽海瀆)은 이때에도 중사(中祀)로 모셨다.

동해신묘(東海神廟)는 황해도 풍천의 서해단(西海壇), 전라도 나주의 남해신사(南海神祠) 등과 함께 해신에게 국토수호, 국태민안을 기원했던 곳으로 4해(海)의 으뜸인 동해지신 (東海之神)이 주석하는 이곳에서 매년 관찰사가 제례를 봉행하여야 하나 양양군수가 대행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의 단묘 사직단 편에 동해묘는 부 (府) 동쪽 10리 해상에 있으며 정전(正殿) 6칸, 신문(神門) 3칸, 전사청(奠祀廳) 2칸, 동

· 서재(東西齋) 각 2칸, 백천문(百川門) 1칸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1908년 일제 통감부 훈령에 의해 동해신묘를 훼철하였다. 그 후 1993년부터 복원사업이 추진되어 현재 정전 6칸 1동이 건립되었다. 정전의 북 · 서쪽에 동해신묘중수기사비(東海神廟重修記 事碑)를 1800년도에 강원도 관찰사 남공철이 세웠으나, 두 토막이 난 것을 양양군이 옛터에 복원하여 세워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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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신묘중수기사비>


■ 전통제례(傳統祭禮)> - 세종오례의(世宗五禮儀)


▶▷ 제사시일(祭祀時日)

서운관(書雲觀)에서 한 달 전에 중춘(仲春) 상순(上旬)으로 택일하여 예조에 보고하면, (仲秋에도 이에 준한다.) 예조에서 계문(啓聞)하고 중외(中外)의 유사(攸司)에 산고(散告) 하여, 직책에 따라 공판(供辦)하게 한다. 사묘의 위판은 동해지신이라 쓰며, 묘를 간수 하는 사람은 근처에 거주하는 양인이나 보충군·공천(公賤)중에서 2호를 정하여, 부역을 면제하여 항상 간수하며 청소하게 한다.

제사(諸祀 : 모든제사)의 의식(儀式) 내에 제사의 신단(神壇)과 묘원(廟園) 밖의 30보에는 땔나무와 짐승을 기르지 못하게 하고, 경작(耕作)과 행인을 금하게 하였으며, 소나무를 심게 하였다.

신위를 설치하되 한가운데 있게 하고, 남쪽을 향하게 하며, 자리는 모두 왕골자리로 한다. 축판은 소나무로 만드는데 높이는 1척 2촌이요, 폭은 8촌, 두께는 6푼이다.(1척의 길이는 28.621cm이다) 축문은“국왕 (성)(서명) 감소고”라 쓴다. 축문은 기일 전에 관원이 받들어 바치는데, 근신이 전해 받들어 이를 바치면 전하(殿下)가 서명하고 이를 마치면 친히 사신(使臣)에게 준다.

기고(祈告)하고 보사(報祀)하는 것도 이와 같이 한다. 폐백(幣帛)의 길이는 1장(丈) 8척 (尺)인데 저포(苧布)를 사용하는데 동해는 동쪽이므로 청색을 사용한다. 행사 집사관은 헌관(관찰사가 하는데, 만약 제소가 겹치면 수령을 나누어 보낸다), 축(祝), 장찬자(掌饌 者), 사준자(司尊者), 찬창자(贊唱者), 찬례자(贊禮者)이다.


▶▷ 제사축문(祭祀祝文)


<別 祭>

維 歲次某年正月干支朔某日干支 大統領○○○委任將事使襄陽郡守

○○○

敢昭告于 東海之神伏以氣畜淵深五行伊始功弘灌漑萬物以成庶諒祈告之誠俾垂豐穰之慶兼任謹譸之至

동해지신께 엎드려 고하나이다. 정기가 아득히 깊고도 넓게 쌓여 오행이 이에 시작하였 나이다. 관개의 넓은 공을 고루 펴시어 만물이 생성하기를 헤아려 주시기를 정성을 다해 비나이다. 오곡이 풍성하게 여무는 경사가 오래오래 드리워져서 겸임하여 삼가 계략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常 祭>

維 歲次某年某月干支朔某日干支 大統領○○○委任將事使襄陽郡守

○○○

敢昭告于 東海之神伏以百谷之王德著廣利享祀是宜永介多祉謹以牲幣醴齊粱盛庶品式陳明薦 尙 饗


동해지신께 엎드려 고하나이다. 큰 바다의 왕이시어 널리 이롭도록 큰 덕을 베푸시니 이에 향사를 올림이 마땅하여 길이길이 많은 복을 이어 주시옵소서. 이로써 삼가 희생 폐백과 진한 술 그리고 여러 제물을 갖추어서 법대로 진설하고 밝게 드리오니 흠향하옵 소서.


▶▷ 제사재계(祭祀齋戒)

제사 전 5일에 행사할 집사관은 모두 그중 3일 동안 산재(散齋)하는데, 정침(正寢)에서 유숙하고, 2일 동안 치재(致齋) 하는데, 1일은 청사(廳事)에서 1일은 제소(祭所)에서 한다. 무릇 산재에는 일 처리하기를 그 전과같이 하되, 오직 술을 함부로 마시지 아니하 고, 파 · 부추 · 마늘 · 염교를 먹지 아니하고, 조상(弔喪)과 문병(問病)을 하지 아니하고, 음악을 듣지 아니하고, 형벌을 집행하지 아니하고, 형살문서(刑殺文書)에 결재하거나 서명하지 아니하고, 더럽고 악한 일에 참예하지 아니하며, 치재에는 오직 제사 일만을 행한다.

이미 재계하고 빠진 자는 통섭(通攝)하여 행사한다.(무릇 제사에 참예 할 사람은 다 제사 전 2일에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제복(祭服)은 도(道)로 하여금 각사의 노비의 신공과 신세포(神稅布)를 써서 점차로 만들고 소재관이 제사를 행하는 데는 헌관(獻官) 은 제복을 입고, 집사와 교생(校生)은 유관(儒冠)을 쓴다. 3품의 관은 3량이요, 혁대는 은을 사용하고, 패는 약옥(藥玉)을 사용하고, 수는 황색 · 녹색 · 적색 · 자색의 네 가지 빛깔의 실을 사용하여 반조화금(盤鵰花錦)을 짜서 만들고, 아래에는 청사망(靑絲網)으로 맺으며, 수의 고리는 2개인데, 은을 사용하고, 홀은 상아를 사용한다. 무릇 제사에 쓰는 희생(犧牲)은 모두 우리〔滌〕에서 3개월 이상 기른 양 한 마리와 돼지 한 마리를 쓰는 데, 희생들은 매질하여 손상시켜서는 안 되며, 죽으면 이를 묻고, 창병(瘡病)이 있는 것은 이를 대체시킨다.


▶▷ 제례진설(祭禮陳設)

제사 전 2일에 유사(有司)가 단(壇)의 안팎을 소제하고, 여러 제관(祭官)의 막차(幕次)를 설치한다. 또 찬만(饌幔)을 설치하되, 다 동문(東門) 밖에 땅의 형편에 따라서 적당하게 한다.

전 1일에 신좌(神座)를 단상(壇上)에 설치하되, 북쪽에 남향하게 하고, 자리[席]는 왕골 [莞]로 한다. 유사(有司)가 생(牲)을 이끌고 제소(祭所)로 나아가고, 헌관 자리를 단하(壇 下)에 설치하되, 동남으로 서향하게 한다.

집사자의 자리는 헌관의 동남쪽에 설치하되, 서향하여 북쪽을 상(上)으로 하고, 찬창자 (贊唱者)·찬례자(贊禮者)의 자리를 동계(東陛)의 서쪽에 설치하되, 모두 서향하여 북쪽을 상으로 한다. 헌관의 음복위(飮福位)는 단상의 남계(南陛) 서쪽에다 북향하여 설치하고, 문외위(門外位)를 설치하되, 헌관 이하는 동문 밖의 길 남쪽에 겹줄로 북향하게 하고, 서쪽이 상이 되게 한다.

예감(瘞坎)을 단의 북쪽 임지(壬地)에 파되, 넓이와 깊이는 물건을 용납할 만하게 하고, (해(海)ㆍ독(瀆)에는 예감(瘞坎)이 없다.) 남쪽으로 섬돌[陛]을 낸다. 망예위(望瘞位)는 예감의 남쪽에 설치하는데, 헌관(獻官)은 남쪽에 있게 하여 북향하고, 축(祝)과 찬창자 (贊唱者)는 동쪽에 있게 하여 서향하되, 북쪽을 상으로 하여 설치한다. 미시(未時) 뒤 2 각(刻)에 유사(有司)가 단의 내외를 소제하고, 찬례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통상복으로 부엌에 나아가서 척탁(滌濯)을 보고, 찬구(饌具)를 살피며, 생의 충실하고 살찐 것을 본후, 재소(齋所)로 돌아온다. 포시(晡時) 뒤에 장찬자(掌饌者)가 재인(宰人)을 거느리고 생(牲)을 잡는다.(가죽 째 삶아 익힌다.) 제삿날 행사 전에 집사자가 축판(祝版)을 신위의 오른쪽에 진설하고, 폐비(幣篚)를 준소에 진설한다.

향로(香爐)·향합(香合)과 초[燭]를 신위 앞에 진설하고, 다음에 제기(祭器)를 설치하고, 장찬자(掌饌者)가 제수 담은 실찬구(實饌具)를 설치하되, 변(籩) 10개가 왼쪽에 있어 세줄로 하여, 오른쪽을 상(上)으로 하고,(첫째 줄에는 형염(形鹽)이 앞에 있고, 어수(魚鱐)· 건조(乾棗) · 율황(栗黃)이 그 다음이요, 둘째 줄에는 진자(榛子)가 앞에 있고, 능인(菱仁)

· 검인(芡仁)이 그 다음이요, 셋째 줄에는 녹포(鹿脯)가 앞에 있고, 백병(白餠) · 흑병(黑 餠)이 그 다음이다.)

두(豆) 10개가 오른쪽에 있어 세 줄로 하여 왼쪽을 상(上)으로 한다.(첫째 줄에는 구저 (韮菹)가 앞에 있고, 탐해(醓醢) · 청저(菁菹) · 녹해(鹿醢)가 그 다음이요, 둘째 줄에는 근저(芹菹)가 앞에 있고, 토해(兎醢) · 순저(筍菹)가 그 다음이요, 셋째 줄에는 어해(魚醢)가 앞에 있고, 비석(脾析)·돈박(豚拍)이 그 다음이다.) 조(俎)가 2개인데, 하나는 변 앞에 있고, 하나는 두 앞에 있다.(변(籩) 앞의 조에는 양성(羊腥)의 칠체(七體)를 담는데, 양비 (兩髀) · 양견(兩肩) · 양협(兩脅)과 등심[脊]이며, 넓적다리[髀]는 양쪽 끝에 있고, 어깨 [肩]와 갈비[脅]는 그 다음에 있고, 등심[脊]은 가운데에 있다. 두(豆) 앞의 조(俎)에는 시성(豕腥)의 칠체(七體)를 담는데, 그 담는 것은 양(羊)과 같고, 모두 생갑(牲匣)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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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簠) · 궤(簋)가 각각 2개인데, 변·두 사이에 있으며, 보가 왼쪽에, 궤가 오른쪽에 있다.(보에는 도(稻)·양(粱)을 담는데, 양이 도 앞에 있고, 궤(簋)에는 서(黍) · 직(稷)을 담는데, 직이 서 앞에 있다.) 등(㽅) · 형(鉶)이 각기 3개인데, 보·궤 뒤에 있어, 형이 앞에 있고, 등이 그 다음에 있다. (등에는 대갱(大羹)을 담고, 형에는 화갱(和羹)을 담는데, 모활(芼滑)을 더한다.) 작(爵)이 3개인데, 보 · 궤 앞에 있고,(각기 점(坫)이 있다.) 준(尊) 6 개를 설치하는데, 모두 작(勺)과 멱(羃)을 얹어서 단 위의 동남쪽 모퉁이에 북향하게 하되, 서쪽을 상(上)으로 한다.(무릇 준(尊) 하나에는 예제(醴齊)를 담고, 하나는 앙제(盎 齊)를 담고, 하나는 청주(淸酒)를 담고, 그 현주(玄酒)는 각 상준(上尊)에 설치한다.

무릇 신에게 제사하는 물건으로 당시에 없는 것은 시물(時物)로써 대신한다.) 세(洗)는 남쪽 섬돌[南陛] 동남쪽에 북향하여 설치한다.(관세는 동쪽에 있고, 작세는 서쪽에 있다.) 뇌(罍)는 세(洗)의 동쪽에 있게 하되, 작(勺)을 얹어 놓고, 비(篚)는 세(洗)의 서남쪽에 늘어놓되 수건[巾]을 담아 놓는다.(만약 작세(爵洗)의 비라면 또한 작을 담아 놓는데, 점(坫)이 있다.) 여러 집사의 관세(盥洗)는 또한 헌관의 세(洗) 동남쪽에 북향하여 설치 하고, 준(樽) · 뇌(罍) · 비(篚) · 멱(羃)을 잡는 사람의 자리는 준 · 뇌 · 비 · 멱의 뒤에 설치 한다.

 


▶▷ 제례행례(祭禮行禮)

제삿날 축시(丑時) 전 5각(刻)에 장찬자(掌饌者)가 들어가 제수를 찬구(饌具)에 담기를 마치면, 집사자가 그 의복을 입고 올라와 신위판(神位版)을 자리[座]에 설치한다. 찬례 자(贊禮者)가 헌관을 인도하여 남쪽 섬돌[南陛]로 해서 올라가서 진설한 것을 점검해 보고 도로 나온다. 전 3각(刻)에 여러 제관(祭官)이 각기 그 제복(祭服)을 입고, 찬창자(贊 唱者) · 찬례자(贊禮者)가 동문(東門)으로 해서 들어가, 먼저 단 남쪽 배위(拜位)로 나아 가서 북향하여 서쪽을 상(上)으로 하고 사배(四拜)하고 나서, 각기 자리로 나아간다. 찬례자가 제관(祭官) 이하를 인도하여 함께 동문 밖의 자리로 나아간다.

전 1각에 찬례자가 축(祝)과 집사자를 인도하여 들어와 단(壇) 남쪽 배위로 나아가서, 겹줄로 북향하여 서쪽을 상으로 하고 섰으면, 찬창자가 말하기를, "사배(四拜)하라."하 여, 축 이하가 모두 네 번 절하고, 관세위(盥洗位)로 나아가서 관세한 뒤에 각기 자리로 나아간다.

집사자가 작세위(爵洗位)로 나아가서 작을 씻고 작을 닦고 나서, 준소(尊所)의 점(坫) 위에 놓는다. 찬례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들어와 자리로 나가면, 찬창자가 말하기를, "사배 (四拜)하라."하여, 헌관이 네 번 절한다.

찬례자가 헌관의 왼쪽으로 나아가서 "유사(有司)가 삼가 갖추었으니, 행사하기를 청합니 다."하고 아뢰면, 찬창자가 말하기를, "재배(再拜)하라."하여, 자리에 있는 자가 모두 두번 절한다. 찬창자가 말하기를, "전폐례(奠幣禮)를 행하라."하면, 찬례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관세위로 나아가서 북향하여 서게 하고, 찬하여 홀을 꽂고, 손을 씻고 손을 닦게 한다.

찬하여 홀을 잡게 하고, 인도하여 단으로 나아가서 남쪽 섬돌[南陛]로 올라가, 신위 앞에 나아가서 북향하고 서면, 찬례자가 찬하여 꿇어앉아 홀을 꽂게 하고, 집사자 한 사람이 향합(香合)을 받들고, 집사자 한 사람이 향로(香爐)를 받들면, 찬례자가 찬하여 삼상향(三上香)하게 하고, 집사자가 향로를 신위 앞에 드린다.(향합을 받들고 폐백을 줄적에는 모두 헌관의 오른쪽에서 하고, 향로를 드리고 폐백을 올릴 적에는 모두 헌관의 왼쪽에서 한다. 작(爵)을 주고 작을 드리는 것도 이에 준한다.) 찬례자가 찬하여 홀을 잡고 구부렸다 엎드렸다 일어나면, 인도하여 내려와 자리로 돌아간다.

조금 있다가, 찬창자가 말하기를, "초헌례를 행하라."하여, 찬례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남쪽 섬돌[南陛]로 해서 올라가 준소로 나아가서 서향하여 서게 하고, 집준자(執尊者)가 멱(羃)을 들고 예제(醴齊)를 떠내면, 집사자가 작을 가지고 술을 받는다. 찬례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신위 앞으로 나아가서 북향하여 서게 하고, 찬하여 꿇어앉아 홀을 꽂으면, 집사자가 작(爵)을 헌관에게 주고, 헌관이 작을 잡아 작(爵)을 드리는데, 작을 집사자에게 주어서 신위 앞에 드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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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신묘 제례1>


 

찬례자가 찬하여 홀을 잡고 구부렸다 엎드렸다 일어나 조금 물러나서 북향하여 꿇어앉게 하면, 축(祝)이 신위 오른쪽으로 나아가서 동향하여 꿇어앉아 축문을 읽고, 이를 마치면, 찬례자가 찬하여 구부렸다 엎드렸다 일어나게 하고, 인도하여 내려와서 자리로 돌아간다. 조금 있다가, 찬창자가 말하기를, "아헌례를 행하라."하여, 찬례자가 헌관을 인도 하여 준소 앞으로 나아가서 서향하고 서면, 집준자가 멱을 들고 앙제(盎齊)를 떠낸다.

집사자가 작(爵)을 가지고 술을 받으면, 찬례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신위 앞으로 나아가서 북향하여 서게 하고, 찬하여 꿇어앉아 홀을 꽂게 하면, 집사자가 작을 헌관에게 주어, 헌관이 작을 잡아 작을 드리는데, 작을 집사자에게 주어 신위 앞에 드리게 한다. 찬례자가 찬하여 홀을 잡고 구부렸다 엎드렸다 일어나게 하고, 인도하여 내려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조금 있다가, 찬창자가 말하기를, "종헌례를 행하라."하여, 찬례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행례하기를 아헌의 의식과 같이 하고, 인도하여 내려와서 자리로 돌아간다.

찬창자가 말하기를, "음복(飮福)하고 조육(胙肉)을 받으라."하면, 집사자가 준소로 나아 가서 작으로 뇌(罍)의 복주(福酒)를 떠내고, 또 집사자가 조(俎)를 가지고 나아가서 신위 앞의 조육을 덜어낸다. 찬례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음복위로 나아가 북향하여 서게 하고, 찬하여 꿇어앉아 홀(笏)을 꽂으면, 집사자가 헌관의 오른쪽으로 나아가서 서향하여 작을 헌관에게 준다.

헌관이 작을 받아서 마시고, 작을 내면, 집사자가 빈 작을 받아서 점(坫)에다 도로 놓는 다. 집사자가 서향하여 조(俎)를 헌관에게 주면, 헌관이 조를 받아서 집사자에게 주고, 집사자가 조를 받아 남쪽 섬돌[南陛]로 해서 내려가 문을 나간다.

찬례자가 찬하여 홀을 잡고 구부렸다 엎드렸다 일어나게 하고, 인도하여 내려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찬창자가 말하기를, "재배하라."하면, 자리에 있던 자가 모두 두 번 절한 다. 찬창자가 말하기를, "변(籩)·두(豆)를 걷어치우라."하면, 축(祝)이 나아가 변·두를 변· 두 각기 하나씩을 전에 있던 자리에서 조금 옮긴다.

찬창자가 말하기를, "사배하라."하여, 헌관이 네 번 절하면, 찬창자가 말하기를, "망예(望 瘞)하라."하면 헌관이 절하고 나면 폐백을 해(海)에 담근다. 찬례자가 헌관의 왼쪽으로 나아가서 "예(禮)를 마쳤다."고 아뢰고 나서, 헌관을 인도하여 나가고, 찬창자는 본디 자리로 돌아간다.

찬례자가 축(祝) 이하를 인도하여 단 남쪽 배위(拜位)로 나아가서 서게 하면, 찬창자가 말하기를, "사배하라."하여, 축 이하가 모두 네 번 절하고, 찬례자가 차례로 인도하여 나간다. 찬창자와 찬례자가 단 남쪽 배위로 나아가 네 번 절하고서 나간다. 집사자가 신위판을 간수하고, 예찬(禮饌)을 거두고 내려와서 이에 물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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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신묘 제례2>


■ 현재의 동해신묘제


▶▷ 의미(意味)

매년 1월 1일 새벽에 동해지신에게 강원도지사를 대리하여 양양군수가 국태민안과 풍농 풍어를 기원한다. 향과 축은 군 자체에서 마련하고, 헌관은 초헌관 양양군수, 아헌관 양양군의회 의장, 종헌관은 양양문화원장이고, 제물은 날 것을 올리고, 폐백은 청색 비단을 올린다.


▶▷ 진행(進行)

찬창자(사회자)의 구령에 따라 제례가 진행된다.

헌관과 제집사, 참반원은 정해진 자리에 엄숙히 도열한다.

초헌관이 정전 안에 들어가 제사상의 제물을 살펴보고 나온다.

헌관이하 참례자는 일동 사배(四拜)를 한다.

전폐례(奠幣禮)를 행한다.

초헌례(初獻禮)를 행한다.

아헌례(亞獻禮)를 행한다.

종헌례(終獻禮)를 행한다.

음복례(飮福禮)를 행한다.

철변두(撤邊豆)를 행한다.

헌관이하 제집사는 4배하고 참반원은 묵례한다.

망료례(望燎禮)를 행한다.(예전에는 폐백은 바다에 띄웠다.) 초헌관이 “예필(禮畢)”이라 큰소리로 아뢰면 제례는 끝난다.

신묘 안 제 집사들은 밖의 절하는 자리에 나와 4배(四拜) 한다.



■ 위패와 축문

위패(位牌)는 ‘東海之神’(동해지신)이라 쓴다.


축문(祝文)

 

▶▷ 別祭 (별제)

[축문]

國王諱謹遣臣襄陽郡守○○○ 敢昭告于 東海之神伏以氣畜淵深五行伊 始功弘灌漑萬物以成庶諒祈告 之誠俾垂豐穰之慶無任謹譸之 至

[번역]

국왕○○○가 보낸 신 양양군수○○○ 감히 밝게 고하나이다.

동해지신께 엎드려 고하나이다. 정기가 아득히 깊고도 넓게 쌓여 오행이 이에 시작하였 나이다. 관개의 넓은 공을 고루 펴시어 만물이 생성하기를 헤아려 주시기를 정성을 다해 비나이다. 오곡이 풍성하게 여무는 경사가 오래오래 드리워질 것임으로 삼가 바라는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 常祭 (상제)

[축문]

國王諱謹遣臣襄陽郡守○○○ 敢昭告于 東海之神伏以百谷之王德著廣 利享祀是宜永介多祉謹以牲幣 醴齊粱盛庶品式陳明薦尙 饗

[번역]

국왕○○○가 보낸 신 양양군수○○○ 감히 밝게 고하나이다.

동해지신께 엎드려 고하나이다. 큰 바다의 왕이시어 널리 이롭도록 큰 덕을 베푸시니 이에 제사를 올림이 마땅하여 길이길이 많은 복을 이어 주시옵소서. 이로써 삼가 희생 폐백과 진한 술 그리고 여러 제물을 갖추어서 법대로 진설하고 밝게 드리오니 흠향하시옵 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