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 시문

정종실록

페이지 정보

조회 142회 작성일 2024-02-05 17:34

본문

 

○ 1399년 명 건문(建文) 1년. 태상왕이 낙산사에서 능엄법회를 베풀고 이튿날 돌아오다.


태상왕이 낙산사에 가서 능엄법회(楞嚴法會)를 베풀고 이튿날에 돌아왔다.


太上王如洛山寺, 設『楞嚴』法會, 翌日還.


『定宗實錄』, 정종 1년 정종 1년 8월 26일 




○ 1400년 명 건문(建文) 2년. 태상왕이 정릉에 이르러 정근 법석을 베풀다. 오대산·낙산사 행차계획을 아무도 몰랐다.


태상왕이 정릉(貞陵)에 이르러 정근 법석(精勤法席) 3) 을 베풀고, 태상왕이 옷을 벗어서 부처에게 시사(施捨)하였다. 장차 대산(臺山)·낙산(洛山)에 거둥하려 하니, 나라 사람들이 승여(乘輿)의 가는 곳을 알지 못하였다. 낭사(郞舍)에서 상소하였다.

“창업한 임금은 자손이 마땅히 본받는 바입니다. 지금 불사(佛事)로 인하여 멀리 외방에 행하시니, 실로 모유(謀猷)를 남기 는 도가 아닙니다. 국군(國君)의 아버지로서 출입하는 것이 때가 없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가시는 곳을 알지 못하니, 나라를 통치하고백성을 사랑하는 도가 아닙니다. 청하건대, 수상(首相)과 두세 훈로(勳老)를 보내어 나라 사람의 정을 진달해서 거가를 돌이키도록 청하여, 성체(聖體)를 보전하고 편안하게 하여 신민의 소망을 위로하소서."

임금이 말하기를, 

“태상왕의 뜻이 이미 정하여졌으니, 비록 재상을 시켜 청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였다.


太上王至貞陵, 設精勤法席. 太上王脫衣施佛, 將幸臺山洛山, 國人不知乘輿所指. 郞舍上疏曰, "草創之主, 子孫之所宜法也. 今因佛事遠行于外, 實非貽謀之道. 以國君之父, 出入無時, 國人不知所之, 非體國子民之道也. 請遣首相及二三勳老, 道達國人之情, 請還車駕, 保安聖體, 以慰臣民之望. " 上曰, "太上之志, 已定矣. 雖使宰相請之, 何益“ 


『定宗實錄』, 정종 2년 10월 정종 2년 10월 24일.


--------------------

3) 정근 법석(精勤法席), 나라의 가뭄이나 재앙(災殃)이 들 때 중들을 모아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고 법회(法會)를 열어 설법(說法)하던 일. 보통 정근(精勤)에서는 중 대신에 무당을 동원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