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 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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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8회 작성일 2024-02-0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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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소풍을 항상 낙산사로 갔다. 그곳에서 보물찾기도 하고, 어느 스님으로부터 낙산사의 유래와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유년시설을 보냈다.

나에게 어린 시절 낙산사는 문화센터 같은 곳이었다.

지금, 낙산사와 관련된 문헌을 찾으면서 스님께서 들려주었던 담론을 보물찾기 하던 즐거움으로 탐색하였다.

과거의 사람들이 경험했던 삶을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고, 나와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경험은 문학"에서 찾을 수 있다. 낙산사를 특별히 좋아했던 허균은 세상의 비난과 역경 속에서 낙산사를 찾아 두보의 시를 읽었다. 그 마음은 불가에서 중시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였다.

의상법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양양에 처음으로 사찰을 설립한 이유이기도 하다. 낙산사는 변방이었지만 교통과 문화의 중심공간으로 불가에서 중시 하는 깨달음의 세계로 설정하였다. 그 탐색과정에서 조신의 꿈이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고 있다.

이처럼 천년사찰 낙산사는 양양문화의 중심이고, 우리 문학사의 시원으로 자리하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최고의 문인과 학자들의 낙산사 시문이 양양의 역사이고 문화가 되었다.

소중한 낙산사 시문을 번역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김진하 군수님과 장석삼 도의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특별히 양양문화를 위해 현신하시는 윤여준 원장님과 향토사연구원분들께도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2017. 12.

 

강원도립대 교수 양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