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시문

어제판부(御製判付) 어제 추증 판부〔御製貤贈判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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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5회 작성일 2024-02-1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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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판부(御製判付) 어제 추증 판부〔御製貤贈判付〕


유몽인(柳夢寅)



하교는 다음과 같다.


비바람 소슬하게 낚시터를 스치는데       風雨蕭蕭拂釣磯

위천에서 물고기와 새와 함께 기심을 잊었네   渭川魚鳥共忘機

어찌하여 늘그막에 응양 장군 되어        如何老作鷹揚將

부질없이 백이와 숙제에게 고사리 캐게 하였나  空使夷齊餓採薇


  여기서 응양은 정난훈신(靖難勳臣)에 비긴 것이고, 백이와 숙제는 자신을 비유한 것이니, 고(故) 처사 김시습(金時習)의 <위천에서 낚시하는 그림에 쓰다〔題渭川垂釣圖〕>라는 시의 뜻이다.

  신하의 충성과 여자의 정절은 똑같은 것이다. 임금이 무례하더라도 신하는 충성을 바쳐야 하니 이는 또한 남편이 불량하더라도 아내가 정절을 지켜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굴원(屈原)이 초(楚)나라 회왕(懷王)을 섬기다가 못가를 거닐며 시를 읊을 적에 슬피 원망하고 호소하며 번번이 군신을 부부에 비기었다. 이것이야말로 고 참판 유몽인의 <늙은 과부의 노래〔老婦詞〕>가 「이소(離騷)」의 뜻을 깊이 체득하여 김시습의 시와 백중(伯仲)을 이루고, 신하와 여자로서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의 얼굴을 붉게 만들 수 있는 까닭이다. 똑같은 절조이니 강개함과 조용함의 고하를 굳이 나눌 필요는 없지만, 조용함이 강개함에 비해 더욱 하기 어렵다.

  지난번 유몽인에 대한 신설 판부(伸雪判付)에서 단종(端宗)의 여러 신하들 중에 특별히 김시습을 거론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유몽인은 이조 참판을 거쳐 대제학에 올랐으니, 자신의 빛을 숨기고 세속과 어울렸다면 무슨 벼슬인들 하지 못했겠는가. 그러나 흉론(兇論) 폐모론(廢母論)과 의견을 달리하여 명리를 헌신짝처럼 던지고 기꺼이 산수 사이에 자신을 맡겨 시에 능한 승려 및 깨달은 승려와 여름 겨울로 함께 지냈으니, 이는 세상을 하찮게 여기고 속세를 떠나 영원히 돌아가지 않으리라 맹세한 김시습의 청광(淸狂)의 본색이다. 

  체포되어 형리(刑吏)에게 서산(西山)에 있었다는 말을 하고는 태연하고 화락하였으니, 김시습의 위천시와 같은 의취가 있었다. 그러니 옛일을 평론하는 선비들이 김시습의 설악산(雪嶽山)과 유몽인의 금강산(金剛山)을 달리 보아서야 되겠는가. 만약 당시 옥사를 맡은 관원이 성조(聖朝)의 관대한 말씀을 체득하여 유몽인의 죄를 따지지 않고 마음대로 하도록 두었더라면, 김시습이 오점을 남기지 않으려 수락산(水落山)에서 몸을 마친 것처럼 유몽인도 서산의 고사리를 캐고 서산의 물을 마시면서 일생을 마쳤을 것을 분명히 알겠노라. 김시습과 유몽인 저 두 사람이 흠모한 것은 백이와 숙제이다.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죽은 것은 다르지만 이는 단지 행적이 다르고 시대가 다른 것뿐이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의리를 취한 일편단심은 백 년을 서로 비추어 털끝만큼도 차이가 없으니, 조정에서 김시습에게 이미 베푼 것을 유몽인에게 베풀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또 내가 세상에 돌아다니는 그의 원고를 구하여 보았는데, 그의 시문 몇 편은 태반이 「이소」처럼 억울하고 불평스러운 심정을 토로한 것이었다. 책을 덮어도 감흥이 일어 등급을 올려 장려하는 은전을 시행하고자 한 지가 오래되었다. 마침 행차하는 길에서 호소하는 그의 족손(族孫)을 만나보고 그의 아들과 조카의 실상을 더욱 알게 되었다. 그의 아들 약(瀹)은 아비와 함께 죽었고, 그의 조카 찬(澯)은 혼조에서 벼슬하지 않고 관모를 벗어 땅에 던지고 북관(北關)으로 달아났는데 숙부의 일이 일어나자 연좌되어 유배 가서 용서받지 못했으니, 또한 그 사람의 아들이며 조카라고 이를 만하다. 일찍이 시행하려 했던 일이니 어찌 굳이 다시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고(故) 이조참판 겸 예문관제학 유몽인을 정경(正卿)에 추증하고 아름다운 시호를 내리고, 그의 아들 약은 벼슬을 회복시켜 주며, 그의 조카 찬도 당상관 3품직에 추증하라. 호조와 충훈부를 막론하고 몰수하여 들인 노비를 계산하여 즉시 내주되 옛 충신 박호(朴箎)의 전례를 따르고, 인하여 여러 유씨(柳氏)들에게 명하여 방계의 친족 중에서 사손(嗣孫)을 정하여 그 제사를 받들게 하라.

정묘 갑인년(1794) 8월 29일


『於于集』



御製貤贈判付 

 

 下敎若曰.

風雨蕭蕭拂釣磯.

渭川魚鳥却忘機.

如何老作鷹揚將.

空使夷齊餓採薇云.

而鷹揚比靖難勳臣. 夷齊就而自况者. 故處士金時習題渭川垂釣圖詩意也. 大抵臣之忠. 女之貞. 一也. 君雖無禮. 臣不可以不忠. 亦猶夫夫雖不良. 女不可以不貞也. 故屈原以楚懷爲君. 而方其行吟澤畔. 哀怨悲號也. 輒皆以夫婦比况. 此乃故參判柳夢寅老婦詞. 深得離騷遺意. 與時習詩爲伯仲. 而可使若臣若女之懷二心者顔發騂也. 等是節耳. 慷慨與從容之間. 不必軒輊. 而從容比慷慨爲尤難. 向於夢寅伸雪判語中. 特拈 時習一人於 端廟諸臣中 盖有以也. 夢寅嘗佐銓衡而躋文苑矣. 和光同塵. 何官不做. 而顧乃歧貳凶論. 脫屣名利. 甘自放於山巓水涯. 與韻釋悟僧. 紀臘結夏. 此時習之傲世逃俗. 永矢不歸之淸狂本色. 及乎被逮. 對吏西山一語. 宛轉雍容. 有時習渭川詩一般氣味. 尙論之士. 其可以時習之雪嶽. 夢寅之皆骨. 差殊觀耶. 若使當時掌獄之臣. 體  聖朝寬大之辭. 敎置夢寅於勿問之科. 任其所之. 則决知其採西山之薇. 飮西山之水. 以終其身. 如時習不受點瑕. 畢命水落之爲矣. 時習, 夢寅彼二人者. 所慕者夷齊也. 一生一死之不同. 特跡耳時耳. 腔子裡從容取義之赤血丹忱. 百載相照. 無絲毫出入. 則 朝家之所已施於時習者 可不施於夢寅乎. 且予徵其稿之謄行於世者而見之. 其詩文幾篇. 太半是離騷壹欝不平之鳴. 掩卷興感. 欲施加等奬異之典者久矣. 際見其族孫蹕路號籲. 益知其子與侄之狀實. 其子瀹與其父同死. 其姪澯不仕昬朝. 脫帽投地. 遁入於北關. 及其叔事出. 坐竄未 宥. 亦可謂是子是侄. 曾所欲施者. 何必更有鄭重. 故吏曹參判兼藝文舘提學柳夢寅贈秩正卿. 賜以美謚. 其子瀹復官. 其侄澯亦贈堂上三品職. 勿論度支勳府. 凡係沒入之臧獲. 計卽出給. 用古忠臣朴箎例. 因令諸柳就旁派中定嗣孫. 奉其香火. 

 正廟甲寅八月二十九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