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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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1회 작성일 2024-02-1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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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의 중심인 양양!


양양은 우수한 문화와 함께 풍요로움으로 인해 일찍부터 문명이 발달된 고장이었으며, 불교가 들어와 꽃을 피웠던 삼국시대부터 불교의 성지로서 많은 고승들의 순례지였으며 화랑들의 중심 수련장이었고, 조선조 강원도의 아홉 고을 중 양양부가 가장 크고 뛰어난 인물과 가축이 번성하였고 재물과 곡식이 넉넉하여 이전의 지방 관리들이 많이 머물러 살았던 곳이다.


이번 설악산시 발간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양양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산재해 있던 작품을 발굴하고 번역하는 작업을 통해 양양문화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사로 된다.


설악산의 지명유래는 설악산은 매우 높고 험하여 8월에 처음으로 눈이 내리는데 여름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라졌다고 하여 설악이라 하였고, 돌들이 불쑥 불쑥 솟아 하늘에 닿았고 산봉우리들이 우뚝 벌려있는데 돌들이 희기가 눈 같아서 설악이라고 하였다. 신라시대에는 설악산을 설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부처님이 득도 하였던 설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설악산을 바라보면 산봉우리가 구름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여 모두 푸른 옥을 깎아서 그림병풍을 둘러놓은 듯하다. 산봉우리와 바위의 온갖 기이한 모양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이복원은 유람하다 넘어져 죽을 뻔 했지만 원망하지 않고 이 기이한 절경이 평생 최고라고 하였다. 그리고 설악산이 유명해진 또 하나의 이유는 삼연 김창흡 선생의 영시암과 매월당 김시습의 오세암으로 인해 조선조 최고의 문인과 학자들이 서로 그 자취를 찾아 유람하였다. 유명한 학자나 문인의 문집에 설악산과 양양의 기록이 전해오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기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헌을 통해 양양지역이 낙산사와 설악산의 산자수명한 풍경과 아름다움이 빼어난 지역이라 말할 수 있으며 양양지역에서 옛 선조님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풍자하고 그 시대의 생활과 사회상을 노래한 시문을 우리는 더욱더 조사 발굴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수한 문화를 재조명해 볼 수 있는 설악산시문을 발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되어 기쁘게 생각하며 이번 설악산 시문을 발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기록 중에 안석경의 동행기에 보면 양양도호부의 태평루에 올랐는데 태평루 편액 안의 글자는 안평 대군의 글씨이고 큰 글자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라고 기록하고 있다.

양양문화원은 양양지역의 훌륭한 역사를 조사 발굴하고 그 자료의 고증을 통하여 조선조 양양도호부 건물의 복원을 기대해 보며, 앞으로 더 많은 기록을 찾아 양양문화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꾸준히 노력할 것입니다.


2019.11


양양문화원장 윤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