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지역의 사지 및 근·현대사찰

서림사지(西林寺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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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1회 작성일 2024-02-1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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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및 연혁


서림사지(西林寺址)는 선림원지(禪林院址)로 가는 길목인 양양군 서면 서림리 108번지 일원에 있었던 사찰로 마을 이름도 서림사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본래 사지는 상평초등학교 현서분교에서 동쪽으로 200m 떨어진 곳으로 현재는 논으로 경작되고 있다. 

사지에서 출토된 서림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삼층석탑은 분교 교정인 서면 구룡령로 2115에 옮겨 놓았다.  비로자나불과 함께 출토된 기와 편으로 미루어 신라하대(9세기 중엽)의 절로 추정된다.

삼층석탑은 고려 시대 양식이며 산재한 기와와 청자, 백자편들로 보아 조선 시대까지 사찰이 유지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문헌에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현산지(現山誌)에는 폐사 이후의 기록만 전한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시대 전기까지 사찰의 면모를 유지하다가 16세기 말인 임진왜란(1592∼1598년)으로 소실(消失) 된 뒤 다시 중창(重創)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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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림사지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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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산지의 서림사:부(府) 서쪽 30리에 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지금도 석불(石佛)이 길옆에 있는데, 이것은 원래 서림사의 주불(主佛)이라 이른다.(자료: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성보문화재


● 서림사지석조비로자나불좌상(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19호. 1996. 9. 30일 지정) 

양양서림사지석조비로자나불좌상(襄陽西林寺址石造毘盧舍那佛坐像)은 현재 서면 서림리 상평초등학교 현서분교 교정에 3층 석탑과 함께 보존되어 있다. 1965년 서림리 108번지에서 발견되어 옮겨 놓은 것이다.

불상의 머리는 없어졌고 몸도 손상이 많은 상태로 임진왜란 때 파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감싼 형태의 지권인(智拳印)으로 법신인 비로자나불상(毘盧遮那佛像)이다.  8각형의 대좌(臺座)는 결실된 부분이 있지만, 조각 솜씨가 매우우수하다. 밑받침돌 위에 4매의 석재로 구성된 하대석을 올려놓았는데, 각 면마다 1구씩의 사자를 양각하였다. 8각 중대석은 각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기고 그사이에 1구의 향로와 7구의 보살상을 배치하였다.

중대석 위에는 별도로 8각의 딴 돌을 놓았는데 이것은 원래 중대석 받침돌로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별도로 중대석 받침을 만든 예는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과 청룡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24호)처럼 9세기 중엽의 대좌에서 보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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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림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 양양서림사지삼층석탑(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2호 1996. 9. 30일 지정)

양양서림사지삼층석탑 (襄陽西林寺址三層石塔)은 상평초등학교 현서분교 교정에 서 있는 탑으로, 출토지는 이곳에서 동쪽으로 약 200m 떨어진 서림리 108번지로 1965년 서림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강원도문화재자료 제119호)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탑은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과 탑신의 1·2층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놓았다. 급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둔하고 무거워 보이는데, 네 귀퉁이가 경쾌하게 들려있어 묵직한 느낌을 덜어주고 있으며, 밑면 1·2층은 4단, 3층은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네모난 노반(露盤)이 3층 지붕돌과 한돌로 조각되어 있다.

몸돌의 너비가 좁고 두툼한 지붕돌이 급경사로 이루고 있어, 전체적으로 가늘고 길어 보이고 안정감이 적다. 기단과 지붕돌의 모습으로 보아, 고려 시대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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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림사지 삼층석탑




■ 앞으로의 과제


서림사는 9세기 중반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신라하대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사찰 터에서 불상과 3층석탑이 발굴되는 것을 보면 사찰 규모가 작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절터가 논으로 경작되는 만큼 하루빨리 학술적 발굴로 소중한 문화재를 수습했으면 한다.

특히“불상의 주변에는 기둥과 주춧돌이 일렬로 늘어서 있어 보존이 양호하였으며, 약사여래 입상도 1구가 발견되어 국립춘천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우리 군 출토 문화재의 세밀한 추적과 관리가 필요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