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지역의 사지 및 근·현대사찰

사림사 선림원지(寺林寺 禪林院址) - (4)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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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8회 작성일 2024-02-1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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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화


미천골(米川谷)

선림원지는 해발 고도 1,359m인 응복산(鷹伏山) 아래에 있으며 이곳에서 발원한 물이 깊은 계곡을 형성하며 사찰 바로 앞을 지나 남대천으로 힘차게 흘러간다. 

통일신라 하대의 초기 선종 사찰로 당시엔 강원(講院)을 운영하였기 때문에 수많은 승려와 수도승들이 찾아 들었던 절 이다.

성불하기 위해 찾아든 학승들을 위해 조석으로 공양미를 몇 가마씩 씻다 보니 쌀 씻은 물이 내를 이루어 후천까지 흘러 들어 수색(水色)이 마치 막걸리를 뿌려놓은 듯 탁해 보였다. 이를 본 후천변(後川邊)에 사는 서림, 영덕 주민들이 쌀 미(米)자 내 천(川)자를 써서 이 골짜기 이름을 미천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속칭으로는 “쌀내골”로 불리다 “사래골”이 되었다 한다.

이를 입증 하듯이 발굴조사 결과 사지(寺址) 남서로 길이 29.2m, 북동으로 길이 25m, 너비 13m의‘ㄱ’자형인 면적 536.6㎡(162평)의 대형 승방지(僧房址)와 기타 부속 건물지 여러 동이 확인되었다.

 

 

폐사지 관련 설화

옛날 어느 해인가? 여름도 다 지나갈 무렵에 낮부터 천지를 분간(分揀)할 수 없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저녁때가 되자 비는 더욱 거세지고 천둥에 번개까지 치며 바람까지 일기 시작했다.

회주스님이 대형 승방에 모든 스님을 모아놓고 무사하길 발원하는 불공을 드리고 있었는데, 경내에 대호(大虎) 한 마리가 나타나 마구 뛰어다니며 울어대더니 요사채 앞에 와서 문을 노려보며 더욱 거세게 울어댔다.

회주스님이 염불을 멈추게 하고는“대호가 저렇게 날뛰니 무슨 변고일꼬? 이는 예사(例事)가 아니요, 누구를 데려가려고 저러는 것이 분명하니 어찌하면 좋겠소?”회의 결과 한 사람의 희생으로 모두의 목숨을 구하기로 결의하였다. 연로하신 회주스님께서 “늙은 나부터 차례로 한 사람씩 밖으로 나가 봅시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두려움을 무릅쓰고 스님들은 차례로 모두 나갔다 왔으나 대호는 여전히 울어대며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상히 여겨 인원을 점검하니 공양주보살(供養主菩薩)이 보이지 않아 찾아본즉, 승방에 딸린 공양간(供養間)에서 내일 찬거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공양주 보살은 손도 미처 닦지 못한 채 억수같이 퍼붓는 빗속으로 나가니 대호가 순간 공양주보살을 덥석 물고는 장대같은 빗줄기 속에서도 날아가듯 어둠을 가르며 앞산으로 뛰어올랐다. 

순간 지진인가? 벼락인가?‘

  번쩍, 쾅 우르르 광 쾅’어두운 밤 산을 쪼개듯 부수듯 산천을 뒤흔드니 높은 뒷산이 절개 (切開)되어 무너지니, 삽시간에 절간을 덮쳐 모두가 사찰과 함께 흙 속에 묻혀 버렸다. 다음날 비가 멎자 공양주 보살만이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공양주보살은 매일 밥을 하면 산짐승과 미물(微物)도 공양할 수 있도록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양물을 보시(布施)하였다.

이에 산신령인 호랑이도 감읍(感泣)하여 은혜를 갚은 것이다.

‘도(道)라는 것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일상(日常)의 행동 하나, 하나가 도(道)’란 진리를 깨우쳐 준 것이다. 즉 자리 깔고 도를 닦는 형식에 치우침보다는 평상시 일상마다 자비 나눔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한 것이다.(平常心是道) <이상은 영혈사 주지 홍선(弘宣) 스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