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지역의 사지 및 근·현대사찰

사림사 선림원지(寺林寺 禪林院址) - (1)위치와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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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8회 작성일 2024-02-1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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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와 창건


선림원지(禪林院址)는 강원도 양양군 서면 미천골길 115(서면 황이리 424번지 일원)로 설악산 자락인 미천골 자연휴양림 입구에서 850m쯤 올라가면 나오는데 발굴조사 시 출토된 유물은 통일신라부터 고려전기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선림원지(9,096㎡)는 아직 정확한 사명(寺名)이 기록된 문헌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동국대학교 발굴조사단이 1985년 7월부터 1986년 8월에 걸쳐 이 사찰을 발굴한 결과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법사(順應法師)등이 창건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48년 출토된 신라 범종명문(梵鐘銘文)에 의하면, 804년(애장왕 5)에 해인사 등 화엄종계통에서 조성하였다는 사실을알 수 있다. 발굴 시 출토된 기와로 보아 적어도 9세기 초에 창건되었다. 

홍각선사는 경문왕 13년(873)경 억성사(億聖寺)로 돌아와 금당과 불전을 새로 짓는 등 중창불사를 주도하였다. 홍각선사는 880년에 열반에 들었으며 홍각선사탑비는 886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아 적어도 홍각선사 당시는 절 이름이 “억성사”로 확인된다. 

‘억성사’는 신라 선종의 제2조로 추앙되고 있는 염거화상(廉巨和尙)이 주석한 곳으로서, 한국 선종사(禪宗史)에 있어 진전사와 함께 중요성이 크다. 염거화상은 도의(道義,?~825년)선사의 제자가 된 이후 844년 입적할 때까지 억성사에 머물렀으며, 가지산문의 개창조(開創祖)인 체징(體澄, 804~880년)은 10년간 이곳에 와서 수학(修學)하였다.  따라서 억성사는 도의-염거-체징으로 이어지는 가지산문의 계보가 성립된 곳으로서 매우 중요한 유적지(遺跡地)이다.

고려 초기까지는 대규모의 절로 자리하고 있었으나 900년을 전후하여 대홍수와 산사태로 매몰된 뒤 폐사지가 되었다.

현재 석축 위에 펼쳐진 절터에는 삼층 석탑, 석등, 탑비, 승탑과 금당지와 조사당(祖師堂)의 주춧돌이 있다. 

선림원지의 삼층석탑과 석등,  홍각선사탑비,  승탑(부도)은 1966년 9월21일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선림원지는 1982년 강원도 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되었다.

첫 번째 발굴조사는 1985~1986년에 있었다. 동국대학교 박물관의 2차례 발굴조사에서 금당지와 조사당지 등의 유적이 확인되었으며 금동여래입상, 금동풍탁, 용면와, 막새기와, 와당, 금동장식, 철정(鐵鋌) 등의 유물이 출토된 바 있다.

두 번째는 약 30여 년이 흐른 뒤인 2015~2018년에 발굴조사 하였다. 그 과정에서 금동불과 부도 옥개석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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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사 선림원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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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 도의대사ㆍ염거화상ㆍ보조선사 체징 진영과

하 :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의 비문에 표기되어 있는 가지산문

제1조 도의, 제2조 염거, 제3조 체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