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 역사

1. 산 좋고 물 맑은 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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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5회 작성일 2024-03-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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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襄陽)은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고 있는 태백산맥의 중동부에 위치한다. 설악산과 동해를 품은 산해가경(山海佳景)의‘해돋이 고장’이다. 영동지방에서는 가장 큰 물줄기인 양양남대천이 이루어 놓은 넓은 삼각주 평야가 있고, 기후 또한 온화하여 예로부터 살기 좋은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BC 6000년) 신석기문화가 양양에서 발견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양양은 고예국지(古濊國地)로 고구려 때에는 익현현(翼峴縣) 또는 이문현(伊文縣)이라 칭하였고 신라시대에는 익령현(翼嶺縣)이라 불렸다. 1221년(고종 8년)부터 양주(襄州)로 불리다가 1416년(태종 16) 에 비로소 양양(襄陽)으로 개칭되었고 1895년 지방제도의 개정으로 양양군이 되었다. 

삼국통일 직후부터 뿌리내리기 시작한 불교문화가 크게 번성하여 신흥사 낙산사 영혈사 억성사 등의사찰이 창건되었고 또한 조계종의 본원이자 선종의 근본 도량인 진전사(陣田寺)가 자리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고성군 토성면과 죽왕면이 양양군에 편입되었다. 1945년 8·15광복 이후 38선으로 남북이 분단되었는데 이때 양양군의 현남면 전역과 현북면 및 서면의 일부가 강릉군에 속하고 나머지 지역은 이북 관할로 들어갔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양양은 동부전선의 각축장이 되어 많은 인명피해는 물론 군 전역이 폐허가 되는 참상을 빚었다. 미군 군정을 거쳐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된 후 양양군 행정구역으로 복원 수복되었다. 1963년 속초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분리되었고 토성면과 죽왕면은 고성군에 그리고 현남면은 양양군에 각각 환원 귀속되었다. 지금의 행정구역은 1읍 5면124리이다.

자연환경은 동쪽으로 동해안을 따라 좁고 긴 평야가 전개되고 서쪽에는 만학천봉(萬壑千峰)이 줄을 이어 남북으로 가로막고 있어 산과 계곡이 많다.  산으로는 서남부에 매복산(1,360m), 약수산(1,306m),  정족산(869m)  서부에 점봉산(1,424m), 북쪽에 설악산(1,708m)등이 있어 강릉시,  인제군,  홍천군,  속초시와의 경계를 이룬다.  또한 이들 산간계곡에서 화상천(和尙川),  남대천(南大川),  오색천(五色川),  서림천(西林川), 물치천(沕淄川)  등이 발원하여 흐른다.

따라서 농경지는 계곡의 하천을 따라 좁게 형성되거나 해안지대에 한정되어 있다.

기후는 서쪽의 태백산맥이 차가운 북서 계절풍을 막아주고 동해의 해양성을 띤 영향으로 연평균 기온 약 11℃~13℃, 1월 0.1℃~3.5℃, 8월 24.1℃~25℃, 겨울에는 서해안보다 3℃영서보다 5℃나 높고, 강우량은 1,100mm~1,200mm이며 특히 영동지방은 5·6월에 동북쪽에서 불어오는 이른바 녹한동(높새)이 있다. 그리고 태백산맥에 의한 휀(Fouhn) 현상으로 인해 남서풍이 강하여 이른바 “양강지풍(襄江之風)”이란 말까지 생겼으며 계절적으로 보면 봄이 짧고 가을이 길다.

주요산업은 농업,  수산업,  임업,  관광산업 등이다.  경지면적은 1999년 현재 4.321ha로 경지율이 93.4%에 불과하며 그중 논이 2.765ha로 64%를 차지하고 밭은 1,547ha로 36.0%를 차지한다. 주요농산물은 쌀을 비롯하여 감자, 옥수수 등이다.

수산업은 350여 척의 어선이 있으나 대부분 5t 미만으로 영세한 형편이며 주로 오징어, 멸치, 고등어 등을 어획하고 있으며 계절적으로 남대천으로 회귀(回歸)하는 연어, 황어, 은어 등이 유명하다.

임산면적은 534.98ha로 전체 면적의 85.11%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송림으로 일본까지 알려져있는 송이버섯을 비롯한 각종 버섯과 취나물, 고사리 등 각종 산채가 난다.

관광산업은 연간 약 1,500만 명의 관광객이 해수욕장과 설악산을 비롯한 인근 명승고적을 찾을 정도로 활발하다. 최근에는 인구와 하조대를 위시하여 양양의 해안을 따라 서핑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양양이 서핑의 성지로 알려지면서 특히 젊은 청년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상업활동은 양양읍의 상설 시장을 비롯하여 현남면 인구리와 강현면 물치리에 정기 5일장이 열리고 있으며 서면 오색리와 강현면 전진리에도 관광객을 위한 상설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양양을 개괄적(槪括的)으로 본다면 근·현대에 이르러 대내외적으로 시대적 변화와 지정학적 변천이무상하여 한때 불행하게도 남북분단의 현장으로 인하여 엘리트 집단도 남북으로 헤어지고 경제 환경의 악화 등으로 지역발전의 지체 현상을 면치 못하였으나 천혜의 자연을 품고 있는 양양은 실로 “살기 좋은 고장”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변방의 숱한 외침으로부터 끈질기게 지켜온 향토 수어의 고귀한 정신과 민족의식, 지리적으로 험준한 자연을 극복하면서 체질화된 근면 성실성과 협동단결력 그리고 불의(不義)에는 결코 굴복하지않는 정의감이 어느 고장보다도 강한 특성을 갖고 있는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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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의 남대천과 주변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