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오색령

Ⅲ. 古地圖를 通한 所冬羅嶺 位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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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684회 작성일 17-03-1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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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所冬羅嶺의 位置

소동라령과 오색령, 옛 한계령은 명백하게 다른 영(嶺)이었다. 이는 먼저 고지도(古地圖)들에 표기된 고개명칭을 보면 오색령, 소동라령, 한계령을 다른 위치의 영으로 함께 표시하고 있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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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들은 영동에서 영서로 통하는 백두대간을 넘는 영들이기 때문에 지도상에도 북에서부터 남으로 순차적으로 표시될 수밖에 없다. 특히 지도는 한눈에 볼 수 있어 글로 기록된 문헌에 비해 영의 좌우관계를 그르칠 우려가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모든 고지도에서 소동라령은 오색령 남쪽 위치에 표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연수파(박달령)와 구룡령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표기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소동라령은 오색령과 멀리 떨어진 구룡령에 더 가까운 영으로 지금의 한계령이 아님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 所冬羅嶺의 文獻記錄

『여지도서(輿地圖書, 1765년)』의 양양 관애(關阨)편에는 오색령⋅필여령⋅소동라령⋅조침령⋅구룡령⋅형제현⋅양한치 등의 일곱 항목이 순차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여기에 보면 “오색령은 설악 남쪽가지에 접하고 인제와 경계를 이룬다. 필여령은 오색령 남쪽가지에 접하고 있으며 춘천 기린계이다. 소동라령은 필여령 남쪽가지에 접해 있고 기린계로 서울로 통하는 길이었으나 지금은 폐지되었다. 조침령은 소동라령 남쪽가지에 접하고 기린계이다. 구룡령은 조침령 남쪽가지에 접하고 있으며 강릉 금천면과 경계를 이룬다”8)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관동읍지(1871)』양양 관애(關阨)편에도 “오색령은 설악산 남쪽가지에 접해있고 인제와 경계이고, 필여령은 오색령 남쪽가지에 접해있고 춘천기린과 경계하며, 소동라령은 필여령 남쪽가지에 접해있고 기린과 경계하며 과거 서울로 가는 길이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조침령은 소동라령 남쪽가지에 접해있고 기린과 경계한다. 구룡령은 조침령 남쪽가지에 접해있으며 강릉 금천면과 경계한다.”9)고 적고 있다.
『강원도 양양군읍지 2(江原道 襄陽郡邑誌 二)』에도 “소동라령은 부 서쪽 60리에 있다. 즉 필여령 남쪽 가지로 기린과 경계를 이루며, 옛날 서울로 통하던 길이였으나 지금은 폐쇄되었다”10)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종합하면 소동라령은 필여령과 조침령 사이에 있었던 영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반하여, 필여령 북쪽에 위치한 현재의 한계령은 소동라령과 같은 영이 아님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3. 所冬羅嶺의 境界記錄

위 문헌뿐만 아니라『대동지지(大東地志)』1866년 양양 영로조(襄陽嶺路條)에는 연수파령⋅오색령⋅필여령⋅박달령⋅소동라령⋅구룡령⋅양한치⋅소량치 등의 모두 여덟 개의 항목이 열거되어 있다. 여기에서 소동라령(所冬羅嶺)에 대해 “오색령, 필노령, 박달령 모두 서쪽 50리 인제계이고, 소동라령은 부 서쪽 60리로 아주 험한 서울로 통하는 대로였다. 기린계이다”11)라고 적고 있다. 또한,『만기요람(萬機要覽)』군정편4(軍政編四) 관방(關防)강원도편에는 “양양영로(襄陽嶺路)는 오색령⋅필여령, 기린(猉麟)통로는 소동라령⋅조침령, 구룡령은 강릉과의 경계, 형제현(兄弟峴)⋅양한치(兩寒峙)모두 서쪽 통로다.”12)라고 기록되어 있고, 1829년에서 1831년 사이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관동지』13권에는 “영로(嶺路) 연수파령은 서북쪽 75리에 있으며 오색령⋅필노령⋅박달령은 모두 서쪽 50리에 있는 인제계(麟蹄界)이다. 소동라령(所冬羅嶺)은 서쪽 60리에 있는 험한 절벽지로 경성으로 통하던 대로로 기린계(麟蹄界)이다. 구룡령(九龍嶺)은 서남쪽 60리에 있으며 강릉계(江陵界)이다.”13)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모든 역사기록에서 소동라령은 춘천 기린계라고 하고 있어현재의 인재군 기린면 진동리를 경계로 하는 영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아래〈지도 2〉1834년도 지도인 청구요람에서 보듯이 귀둔까지는 인제현 관할이었으나, 기린면 진동리는 당시 춘천부 관할의 기린현에 속해 있었고, 구룡령 너머 홍천과 평창의 일부지역은 강릉대도호부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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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所冬羅嶺의 흔적(痕迹)

『신증동국여지승람』제45권 강원도(江原道) 간성군편에 보면 “미시파령(彌時坡嶺)은 고을 서남쪽 80리쯤에 있다. 길이 있으나 예전에는 폐지하고 다니지 않았는데 성종(成宗) 24년에, 양양부 소동라령(所冬羅嶺)이 험하다하여 다시 이 길을 열었다.”14)고 적고 있고,『신증동국여지승람』양양부산천조에도 “소동라령(所冬羅嶺)은 부 서쪽 60리에 있으며 겹쳐지고 포개진 산맥에 지세가 험하고 궁벽지다. 예전에는 서울로 통하는 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15)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소동라령으로 추정되는 북암령을 실사한 결과 귀둔(耳屯,耳呑)에서 진동리로 연결되는 곰배령은 텔레비전 드라마의 영향으로 이미 옛길 탐방코스로 변해있었고 진동리 삼거리에서 북암령 정상까지는 고개가 완만하며 일부 도로는 유실되었으나 옛길의 도로폭도 2m정도로 우마차가 다녔음직한 대로였으며, 정상에는 위에 이정표를 세웠음직한 돌무지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6척(尺)을 1보(步), 360보를 1리(里), 30리를 1식(息)이라고 하고 10리마다 작은 표식을, 30리마다 큰 표식을 세우며, 30리마다 역을 1
개소씩 설치하도록 규정하였고, 일정한 거리마다 돌무지를 쌓고, 장승을 세워 도로의 리수와 지명을 기록한 도로표지를 설치하였다.”고 한다.16) 영정상의 돌무지는 정상 주변에는 돌이 없고 돌의 규격도 고른 것으로 보아 일부러 돌을 옮겨 쌓은 것으로 보여 국가에서 관리하던 영로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양양에서의 거리가 30리 이였음도 짐작할 수 있었다.

정상에서 북암리 방향은 급경사였고 계곡을 따라 길이 형성된 관계로 폭우로 많은 구간이 유실되어 있었으나 나라에서 영로를 폐지한 지 600여 년이 지났음에도 많은 구간에 도로의 형태가 남아있었고, 노폭은 서쪽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2미터 이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암령을 접어들기 위해서는 양양에서 한(寒)고개(발딱고개)나 망령고개까지 넘어야 했으므로 지세가 험한 궁벽지라는 기록을 실감하게 했고, 국가의 영로로서 비만 오면 유실되는 급경사인 소동라령을 관리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소동라령을 폐지하였음에도 지역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조선말까지도 일반인들은 이 영을 많이 이용했다고 하고 있으며 이를 입증이나 하듯이 1911년 조선지지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강원도 땅이름의 참모습』인제편 영치현명(嶺峙峴名)에 보면 곰밴령(丁嶺, 곰배령)을 양양으로 통하는 영로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행자들이 민가에서 자야하는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국가에서 관장하던 원(院)이 조선후기에 들어가면서 그 기능이 쇠퇴하자 주막(酒幕)이 그 역할을 떠 맞게 되었는데 길손들이 먹고 자던 주막이 진동리에 갈터주막, 삼거리주막, 귀둔리에 버덤말주막, 곰배골주막, 하추리에 가래울어주막, 당수터주막, 원대리에 안삽재주막 등 이 구간에 특별히 주막이 많이 남아 있다.
『인제군지』의 기린면 북리 마을의 유래를 보면 대부분 역(驛)과 관련된 자연부락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대표되는 마을은 상역(上驛)·중역(中驛)·하역(下驛)·역동(驛洞)·역골(驛谷) 등인데 특히 연락촌(連絡村)은 옛날 관가에서 연락을 다니던 사람들이 이곳에서 쉬어가기도 하고 말굽을 고치기도하고 다른 말을 바꿔 타고 다니기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지역이 조선시대에 소동라령의 역로(驛路)였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 <표 2> 인제군 기린면 북리 지명유래 요약 ]

■ 담배골 : 하역 앞 골을 가리키며 담배를 많이 재배하였다 하여 지은 이름
■ 상역(上驛) : 역골 웃말
■ 섬바위 : 상역 골 중간 지점에 있으며 볏섬 쌓듯이 바위덩어리가 첩첩이 쌓였다하여지은 이름
■ 역골 : 잔다리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에 역이 있었다고 한다.
■ 역동(驛洞) : 역골
■ 연락촌(連絡村) : 옛날 관가에서 연락을 다니던 사람들이 이곳에서 쉬어가기도 하고 말발굽을 고치기도하고 다른 말을 바꿔 타고 다니기도 하였다 해서
부르게 된 지명
■ 운이덕 : 역골 동북쪽 높은 지대에 있는 마을로 구름에 덮여 있다고 해서 지은 이름
■ 중역(中驛) : 역골 중간 마을
■ 하역(下驛) : 역골 아랫말
■ 할미바위 : 하역 앞골에 위치하였으며 모양이 할미꽃과 비슷하다하여 지은 바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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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여지도서』 江原道 襄陽 / 關阨편
五色嶺 在府西五十里卽是雪嶽南枝接麟蹄界, 弼如嶺 在府西四十里卽五色嶺南枝接春川 猉麟界所冬羅嶺 在府西六十里卽弼如嶺南枝接猉麟界舊有路通京中今廢 阻沈嶺 在府西四十五里卽所冬羅南枝接猉麟界 九龍嶺 在府西七十里卽阻沈南枝接江陵 金川面界 兄弟峴 在府西四十里向五色嶺路兩峴對峙相似故名 兩寒峙 在府西二十里向九龍嶺路
9)『관동읍지』관애편
五色嶺在府西五十里卽是雪嶽南枝接麟蹄界 弼如嶺在府西四十里卽是五色嶺南枝接春川掑獜界 所冬羅嶺在府西六十里卽弼如嶺南枝接掑獜界舊有路通京中今廢 阻枕嶺在府四十五里卽所冬羅嶺南枝接掑獜縣界 九龍嶺在府西七十里卽阻枕南枝接江陵金川面界
10)『 江原道 襄陽郡邑誌 二』
所冬羅嶺 在府西六十里 卽弼如嶺南枝接掑獜界舊有路通京今廢
11)『대동지지(大東地志)』양양, 영로조
五色嶺 弼奴嶺 朴達嶺 俱西五十里獜蹄界. 所冬羅嶺 西六十里絶險舊有通京大路獜蹄界.
12)『만기요람(萬機要覽)』군정편4(軍政編四) 관방(關防) 강원도(江原道)
襄陽嶺路 五色嶺 弼如嶺 猉麟路 所冬羅嶺 阻沈嶺 九龍嶺 江陵界 兄弟峴,兩寒峙 幷西路.
13)『關東誌』 제13권
嶺路連水坡嶺西北七十五里五色嶺弼奴嶺朴達嶺俱西五十里麟蹄界所冬羅嶺西六十里絶險舊有通京大路麟蹄界九龍嶺西南六十五里江陵界.
14)『신증동국여지승람』제45권 강원도(江原道) 인제현
彌時坡嶺在郡西南十里許有舊廢不行 成宗二十四年以襄陽府所冬羅嶺險危復開興路
15)『신증동국여지승람』양양부 산천조
在府西六十里重巒疊嶂地勢險阻舊有路通京師今廢
16)『양양군지』 양양군, 발행일 2010, 11, 30, 163페이지 교통과 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