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오색령

Ⅰ. 머 리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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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79회 작성일 2017-03-1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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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령은 행정구역상으로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산 1-30번지이며 해발 1,004m로 예전부터 영동과 영서를 잇는 주요 영로였다. 고문헌에 처음 부른 것은 소솔령(所率嶺)이라 했는데, 선조 29년(1596) 2월에 비변사가 아뢰기를 적병이 영동으로 침입하면 이 영(嶺)을 넘을 것이니 방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 것이 오색령의 효시(嚆矢)이다.

조선 말기 지리학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의 고본(稿本)이라고 할 수 있는 동여도(東輿圖)에 오색령을 고대로(古大路)라 하였고, 그 외 각종 고지도(古地圖)와 고지지(古地誌)에 한결같이 기록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색령 도로에 대한 일제강점기 공식적인 기록은 조선총독부가 1913년도 관보에 3등 도로로 고시한 것과, 1923년도에 영서의 춘천·홍천·양구·인제 4개 군의 찬동 하에 각 군별로 당시 강원도에 진정서를 제출하였고, 영동에서도 강릉·삼척·울진군의 역장동성(亦將同聲) 협찬한 결과 강원도는 오색령 도로를 2등 도로로 개설 할 것을 승낙한 사실이 조선총독부 매일
신보에 밝혀졌다.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위와 같이 조선총독부가 행정내적으로 오색령 도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였음에도 1915년도에 조선 침탈을 목적으로 만 든 1/50,000 지도에 한계령 지명을 표기 한 것을 고치지 않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도 계속사용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59년경에 전국의 지명조사를 실시하였는데 당시 조사대상은 지도상에 기재되어 있는 지명에 한해 조사토록 되었다. 그 당시 지도상에는 오색령 지명은 누락되어 양양군에서는 보고할 수 없었으나, 인제군에서는 한계령이 지도에 표기되어 있어 보고 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인제군 북면 지명제정위원회는 한계령의 지명유래를 “영동과 통하는 오색이영의 낮은 영으로써 한계지역에 있다하여 한계령이라고 하나 오색이영 이라고도 함” 을 국무원에 보고 한 것을 1961년 4월 22일 전국지명을 고시할 때 한계령도 함께 확정 고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양양문화원은 지난 9월에 양양 600주년 기념사업으로 오색령 정상에 기존에 설치한 소형 표석을 제거하고 “백두대간 오색령”이라 각자한 대형 표석으로 교체하였다. 이는 군민정서에 반한 지명변경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 전달이며 반드시 오색령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군민의 단합된 의지 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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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양양문화원부설향토사연구소에서 2011년도에 한국문화원연합회 주관 제26회 전국향토문화공모전에서 논문부문 최우수상을 수 한 바 있는 “오색령 지명에 관한 고찰”과 2012년에 제22회 강원도 향토문화연구발표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는 “소동라령에 대한 고찰”의 두 논문의 핵심내용은 잘못된 한계령 지명을 오색령으로 복원해야 된다는 같은 의미
의 논문임으로 이원화 보다는 합편하여 군민의 곁으로 다가가 오색령으로 지명을 복원하는데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한다.